안과 밖에서 본 중앙일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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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밖에서>박금자 <주부·70∼78년 중앙일보기자>
8년 가까이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나름대로의 애정과 비판의 양면적인 눈을 가지고 신문을 보아왔다. 신문사를 그만둔 뒤에도 여전히 애정어린 눈과 비판의 눈을 동시에 지닌 채 신문을 보아 온 것 같다.
그러나 신문사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신문을 보는 시각은 무척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안에 있었을 때는 신문 사내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테고 밖에 나가서는 결과만을 가지고 비교검토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중앙일보는 활자와 편집이 우선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 좋다.
또 창간이후 매일 한 페이지씩 할애하고 있는 여성란은 주부들과 신문을 더욱 가깝게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건강문제를 많이 다루는 과학면이나 1주일에 한번씩 생활전반에 대한 정보 한가지씩을 철저히 취재 보도해 주는「주말 라운지」등이 생활인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지면인 것 같다.
신문을 오래 읽다보면 문장에 감격하지 않고 내용에 간격해지 게 된다.
문장은 다소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내용이 알차면 읽은 뒷맛이 개운해진다.
덜 세련된 문장이나마 생활주변의 고운 때가 묻은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실리는「손거울」난은 그런 의미에서 주부독자로서 칭찬을 해주고싶다.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주부들의 사진이 신문에 매일 나오다시피하는 것도 신문과 독자를 가까이 맺어주는 것이라 보겠다.
사회면 중에서는 가끔 지나친 보도경쟁을 본다.
안에 있을 때 선의로 해석되었던 이 보도경쟁도 밖에서 결과만을 놓고 볼 때 마땅치 않은 점이 간혹있다.
특히 사건기사를 쓸 때 확인에 확인을 한 후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싶다.
중앙일보의 전체적인 이미지는「생활인」을 위한 신문이란 것이다.
좀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활인을 위한 신문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욕심을 부리자면 보다 전문적인 것을 지향하는 독자층을 위한 배려도 잊지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 숫자 또한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안에서>성병욱<중앙일보 정치부장>
중앙일보도 이제 지령5천을 쌓았다. 16년 70일이란 물리적인 시간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그 등안 신문제작에 참여해 온 사람으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중앙일보가 창간된 후 16년여의 세월은 우리나라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미증유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겪은 기간이다.
가치관의 변화, 가치서열의 변동이 어느 때보다 심했다.
신문은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며, 신문제작은 끊임없는 판단과 선택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변화와 굴곡이 심한 시대를 비추다보면 부지부식간에 거울자체가 굴절되는 수가 있다. 이러한 굴절이 없도록 하는 건 일선기자로부터 발행인까지 모든 제작자들의 책임이다. 신문이 사실을 보도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불가피하게 취사 선택의 과정이 따른다.
사회 각부군의 수많은 사상가운데 어느 것을 골라 보도하느냐 하는 건 일종의 가치판단의 과정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6연여는 신문제작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던 시절이다.
우선 사회·경제적인 급격한 변동으로 사회각부문과 계층간의 이해가 첨예해지고 가치체계가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이 어느 부문, 어느 가치관을 어느 정도 조명하는 게 합당할까하는 문제가 항상 제기됐다.
신문에 대한 사회의 기대는 그야말로 갖가지다.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
비난에 치중해야 한다, 정보제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 보수적이어야 한다, 밝은 지면을 만들어야 한다, 기사 건수가 많아야 한다, 중점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그래서 재미있게 만들려다 보면 독자에 영합하여 샌세이셔널리즘에 흐르기 쉽고, 품위와 격을 중시하다 보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상충된 요구를 제때 소화해 신문을 만들자면 제작진의 안목과 양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양식의 바탕은 결국 이웃과 공동사회,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봉사의식일 듯 싶다. 이렇게 봉사한다는 생각에서 신문을 만들 때 신문인은 자기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동안 적지 아니 자부심이 손상될 정도로 남의 말만으로 신문이 만들어졌던 것 같아 자괴를 금하기 어렵다.
5천의 지령을 쌓으면서 앞으로는 우리 모두가 봉사의식을 지니고 내 목소리로 지면을 만드는 자부심을 지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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