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의 과학 읽기] 어라, 어렵지 않네 어깨 힘 뺀 편안한 과학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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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과학이나 기술에 대한 글쓰기는 아직도 특별한 무엇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과학이나 기술이 어려운만큼 그런 주제를 다루는 글도 보통 글과는 다르다는 고정된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나 일반인을 상대로 한 과학교양서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을 다룬 글들은 한결같이 읽는 이들보다 한 계단 높은 곳에 올라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자세를 취한다. 이른바 계몽의 강박인 셈이다. 흔히 과학책이 재미없어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저자들이 "최소한 이 정도 지식이 있어야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일방적인 판단에서 비롯된다.

스스로를 제너럴리스트라 칭하는 강태훈의 '클릭을 발명한 괴짜들'(궁리)은 과학 글쓰기 면에서 신선한 한줄기 바람과도 같다.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에서 소프트웨어 컨설턴트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을 거치고 무기발달사, 남미 고대 문명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저자는 자신을 전문가로 분류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설명하려들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하이퍼텍스트와 인터넷을 다루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버니버 부시와 그가 제기한 하이퍼텍스트의 원조인 메멕스가 될 수도 있고 하이퍼 텍스트의 실질적인 창시자이자 마우스를 발명한 더글라스 엥글바트 이야기가 주제라고 해도 괜찮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클릭'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상징(icon)이 된 행위에 얽혀드는 숱한 이야기들을 짜모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자체가 하이퍼텍스트이다.

이 책은 종전 직후 엥글바트가 필리핀의 섬에서 우연히 부시가 라이프 잡지에 쓴 글을 읽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테드 넬슨이 하이퍼 텍스트의 기술적 문제 중 하나로 여러 개의 판본을 유지시키는 버저닝을 착상하게 된 것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당시 무대였던 미국의 상황을 소개하기 위해 1969년의 우드스톡 록 콘서트 이야기가 여러 쪽에 걸쳐 실감나게 묘사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들은 "혹시 이 책이 괴짜들의 신변잡기를 들추어내느라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건성 넘어가는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답은 '아니다'이다.

이 책의 기술적 서술은 매우 진지하다. 단지 그것들이 다른 이야기들과 같은 수위로 담담하게 서술될 뿐이다. 따라서 읽는 이들은 편안하게 기술적 문제들을 접하거나 아니면 뛰어넘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이런 내용을 뛰어넘고 자신이 좋아하는 기술적 문제만 골라 읽을 수 있다. 이처럼 내용 중 일부를 부담없이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과학이나 기술이라는 주제가 학자나 전문적인 저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새로운 세대의 과학 글쓰기인 셈이다.

그것은 한 주제에 여러 판본이 있는 하이퍼텍스트와도 상통하지 않을까?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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