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5년 4월 남북 관계는] 노 대통령, 북한에 쓴소리 왜 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독일을 국빈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쾰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대통령궁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를린=김춘식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베를린에서 "북한에 쓴소리도 하고 얼굴을 붉힐 때면 붉혀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간 노 대통령의 대북 기조는 유화론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지난해 11월 LA 발언과 대비된다. 당시 노 대통령은 "북핵이 자위 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며 유화적 대북 접근의 정점을 이뤘었다(관련 발언록 참조). 이때는 6자회담 조기 재개와 실질적 진전을 통한 북핵 해결을 집권 3년차의 선결 과제로 잡았던 시점이었다.

그랬던 노 대통령이 5개월 뒤 베를린에선 '약속과 도리'를 강조했다. 최근 북한의 태도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제기했다. 동포 간담회에서 그는 "공평한지에 대해선 문제 제기가 있지만 적어도 핵무기 확산을 하지 않고 평화체제를 유지하자는 NPT(핵확산 금지조약) 합의는 북한이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또 "북한은 1991년에 남북 간 평화 공존과 교류 기본 협정을 맺고도 안 지켰다"며 "미국의 위협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은 전혀 무시하고, 자신들은 핵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1층 짓고 2, 3층 지어야지 한꺼번에 7, 8층 올릴 수는 없다"며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약속이 우선 지켜져야 함을 강조했다.

최근 남북 공식 대화가 중단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그는 "지난해 (김일성 주석 사후 10주년) 조문하러 가겠다는 사람을 허용하지 않은 것과 베트남을 거쳐 468명의 탈북자가 온 것을 가지고 북한이 적대행위라며 대화를 막고 있다"며 "우린 적대행위가 아니라는데 북한은 대화의 문을 막으니 난감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준비된 원고 없이 진행됐다. 한 참모는 "6자회담 참가의 무기한 중단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2월 10일의 북한 외무성 성명 이후 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을 감추지 않아 왔다"고 전했다. 3월 초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할 말 있으면 (6자회담에) 나와서 하라"며 불쾌감의 일단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참모는 "야당의 뭇매를 맞으면서 LA 발언 등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성의를 다했으나 북한이 거꾸로만 가는 상황은 더 이상 곤란하다는 판단을 피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상황이 좋았다면 전향적 대북 제안을 담은 제2의 '베를린 선언'도 가능했다"며 "그러나 북한이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는 터에 마냥 선의로만 대할 수 없으며, 6자회담 참가의 최종 결단을 내리라는 전략적 압박, 경고"라고 말했다. "6자회담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힐 국무부 차관보)며 '인내심의 한계'를 거론하는 미국 내 분위기도 감안한 모양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그러나 "대화를 통한 북핵의 평화적 해결, 남북 교류 협력 진전의 그간 정부 기조에 아직 변화는 없다"고 했다.

베를린=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