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269>|제75화 패션50년 (5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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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60년대가 저무는 69년12월말의 신문 문화면과 여성지들은 제각기 70년대 패션경향을 점치기에 바빴다.
대망의 1970년대 서막을 장식할 70년도의 유행 모드는 과연 어떤 것일까가 누구에게나 관심거리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60년대는 우리 한국여성들이 참된 유행감각에 눈뜬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타이트스커트, 맘보 바지, 색드레스의 말썽 많던 유행을 거치고 토플리스니, 비키니에 마이크로미니에다 노브러지어외 시드루루크까지 정신이 어지러운 의상의 대격변을 겪으면서 오히려 우리나름의 어떤 것을 찾을 준비를 갖췄다고나 해야 할는지.
한가지 유행이 무분별하게 모든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시대는 지나고 자기 개성에 맞는 모드를 여러 유행중에서 선택해 입을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60년대초 우리 민족이 겪은 두 차례의 혁명이 큰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신생활복등 생활검소화 운동으로 들떠 있던 양장모드가 지탄을 받고 자중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70년대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과연 어떤 스타일의 옷이 유행의 물결을 이룰는지 예상하기는 실로 어렵다는 것이 69년말 당시패션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서구에서는 이미 맥시코트가 대유행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69년에야 비로소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확실한 성격으로 받아 들여진 미니가 해가 바뀌기도 전에 퇴조하리라고 예상한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견해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자꾸 짧아지다 보면 그 반발로 반드시 길어진다는 것이 유행 주기에 따른 정석이고, 이런 이론을 반영하듯 몇몇 디자이너들이 쇼를 통해 발표하는 70년도 새해 모드도 역시 맥시를 많이 내놓고 있어 늦어도 70년 가을부터는 맥시선풍이 불기 시작할 것이라는 의견이 공통된 전망이었다.
이렇듯 패션전문가들조차 쉽게 예측하기 어렵도록 다양성과 가변성을 지니게 된 것이 70년대를 맞는 패션의 세계적 추세였다.
세계적 패션의 총아 「이브·생·로랑」조차 69년과 70년에 걸친 가을·겨울 컬렉션 개막직전 『인간의 우주여행이 패션에 미친 영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30년뒤, 즉 서기2000년대의 복장이 「루이」15세 시대의 그것이 되지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고 시니컬하게 반문했다는 외신도 그러한 시대상황의 한 반증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매스컴들은 「오늘은 맥시, 내일은 마이크로미니를」이라거나 「고전과 전위, 극단이 뒤섞여」「입어내면 그만, 정착은 없어」라는 식의 제목으로 입는 이 자신의 판단력과 선택에 많은 것을 맡기는 태도를 취했다.
이래서 맞게 된 것이 이른바 3M시대-무릎위 20cm까지 치올라간 얼트러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와 무릎과 발목의 중간에 자리한 미디, 그리고 땅을 쓸듯 발목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맥시가 사이좋게 공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니도 무릎이 살짝 나오는 정도의 온건한 것에서부터 얼트러 마이크로까지 길이가 다양한데다 미디도 샤넬라인에 가까운 무릎 바로 아래에서부터 맥시와 구분이 어렵게 긴 것까지 다양했으니 1970년대초야말로 모든 기장의 모드가 동시에 진행된 유행의 전시장과도 같았다.
60년대 전반에 걸친 영패션의 거센 영향으로 뒷전에 물러앉았던 엘리건트한 멋이 다시 되살아나고 몸매에 자신이 없는 30, 40대 이상 중년여성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갈수 밖에 없었던 미니돌풍에서 벗어나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 것도 바로 이 3M공존시대의 특기할 사항이다.
팡탈롱과 미디·맥시의 등장으로 허리 아랫부분의 실루에트가 풍성해지자 상체부분은 오히려 더 작게보이게 몸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스타일이 등장한것도 이무렵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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