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르포]'우산혁명' 속에 들어가 바라본 홍콩의 오늘과 내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도심을 점거한 '우산 혁명'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다. 홍콩 정부와 시위대는 지난 6일 만나 12일 이전에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 정부는 대화의 성과를 확인하고 실행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시위는 소강되고 홍콩의 일상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학교가 다시 수업을 열고 교통과 금융업무도 정상화되고 있다.
지난 열흘 간 홍콩 현지에서 시위대의 움직임을 밀착 취재한 교민 방병훈 씨가 생생한 사진과 글로 현지 소식을 알려왔다. 사진·글=방병훈, 정리=심서현 기자

2012년 중국식 국민교육에 반대하기 위해 정부청사 주변에 모인 홍콩 시민들

2012년 홍콩정부는 ‘중국식 국민교육’ 과목 도입을 결정했습니다. 홍콩의 많은 학생과 시민들은 중국식 세뇌교육이라며 거세게 저항했습니다. 결국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당시 시위의 중심에는 대학 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HKFS)와 중ㆍ고등학교학생운동단체 ‘학민사조(學民思潮)’ 설립자 고교생 조슈아 웡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 중인 HKFS 학생들

2014년 지금,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민주화를 요구하는 ‘우산 혁명’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HKFS와 학민사조의 조슈아 웡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홍콩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Causeway Bay 의 도로를 점거중인 학생과 시민들

지난달 26일 정부 청사 앞 시민광장을 학생들이 점거하는 과정에서 조슈아 웡이 연행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각 학교에서 학생들의 주도로 수업거부 찬반 토론과 투표가 진행되었고, 대학생들의 수업거부선언을 시작으로 중고등학교까지 수업거부에 돌입했습니다.

긴장 상태에 돌입한 시위대

지난달 28일 렁충잉 행정장관은 정부청사 주변과 도로를 점거한 불법시위를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며 최루탄을 사용해 시위대 강제해산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우산이 유일한 방어도구였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루탄까지 동원한 강제진압은 교사, 학부모 그리고 시민들의 분노와 참여를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Occupy Hong Kong은 우산 혁명이 되었습니다.

단식에 돌입한 기독교인들
시위에 동참한 노동조합원들
9월 30일 정부청사 주변에서 언론 인터뷰 중인 학생
10월1일. 점거에 함께 한 모자. 더위를 식히기 위해 손에 작은 선풍기를 쥐었다.

우산 혁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과 성숙한 시위 모습 입니다. Central, Causeway Bay 그리고 Mong Kok 이렇게 홍콩의 주요거점 세 장소에서 진행되는 시위 현장에는 교복을 입고 시위대에게 음식물을 제공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청소부를 도와 분리수거 중인 시민들
거리에 마련된 분리수거센터.

무엇보다 인상적인 모습은 시위 현장의 모든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학생들의 수고였습니다. 아직까지 홍콩에는 분리 수거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이 시위에서 홍콩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청사 인근 공사현장의 철제 빔에 올라가 쉬고 있는 학생들

대학생들은 거리 공부방을 개설하여 시위에 참여한 중·고등 학생들의 학습과 숙제를 돕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시위에 참여하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본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물품보급소
깃발을 청소하는 노인과 학생 봉사자

두 번째 특징은 학생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네트워크 입니다.
거리에는 의·약대생들과 교수들이 세운 간이 의료센터가 곳곳에 설치되어 누구나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위대를 위한 다양한 먹거리와 물품들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장비로 즉석 바비큐를 대접하는 시민도 있습니다.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다양한 피켓과 구호를 제작하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각 나라 언어로 된 팸플릿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습니다.

하루는 도움이 필요해 학생들에게 본부가 어디인지 묻자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에겐 본부가 따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주어 문제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시위대는 정부의 인터넷 차단에 대비해 인터넷 연결 없이 블루투스만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파이어챗(FireChat)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공유된 시위 현장과 소식은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전송되었습니다. 그렇게 우산 혁명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외신들의 취재 열기도 뜨겁다. 미국의 종군 사진기자이자 현역 최고의 보도사진기자로 꼽히는 제임스 낙트웨이의 등장. 그가 나타나자 모든 기자들이 길을 내주었다.

세 번째로 비폭력 평화 시위 입니다.
최루탄 사용이 언론에 보도되고 한국의 지인들에게서 많은 안부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보도와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우산 혁명은 홍콩이 상징하던 평화와 열린 문화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최루탄과 최루액을 우산으로 받아내고, 거리에서 노래하고, 담벼락에 희망을 적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장애인도 노란 리본을 같이 만들고, 온 가족이 민주주의 축제를 즐기며, 외국인들도 함께 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친(親) 중국 집단이 occupy 점거 농성장에 돌입해 시위대를 폭행하고 텐트와 집기를 철거하고 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시위대는 이 때에도 “침착합시다(Stay Calm)” 외치며 비폭력으로 맞섰습니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표시로 두 손을 위로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폭력에도 비폭력으로 대항하겠다는 표현이자 약속입니다.

시위대의 점거에 항의하는 친중국 시위대
시위대를 폭행한 용의자를 포위한 시민들. 폭력을 쓰지 않는 증거로 두 손을 위로 든 채 용의자가 경찰에게 연행될 때까지 둘러쌌다.
경찰이 폭행 용의자를 풀어주자 시민들이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최루 스프레이를 내보이며 그만 항의하라고 경고했다.
폭행 용의자는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다음날 경찰은 이들이 홍콩 폭력조직인 삼합회(Triad)와 연관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친중국 시위대에 의해 농성장이 철거된 후의 모습
시위의 상징인 노란 리본

최루탄과 시위대-친중 시위대 사이의 마찰, 그리고 중국 군대 투입 가능성 등이 보도되며 안부를 묻는 전화와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비춰진 모습은 일부입니다. 홍콩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들의 우산 아래서 보호 받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보다 안전하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학생연합이 정부와의 대화 재개를 발표한 10월 6일 월요일을 기점으로 거의 많은 학교가 정상 수업을 시작하였고, 학생들이 점거를 풀어준 출입구로 공무원들이 정부청사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청사 주변은 시위대에 의해 점거된 상태지만 홍콩의 일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도무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점거와 일상이 나란히 진행되고 있는 홍콩. 이 또한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특수한 상황에 중국 정부와 홍콩 시민이 적응해가는 과정입니다.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를 간직한 신흥 초강대국 중국과 우산 혁명의 홍콩.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지만, 거리에서 만난 홍콩 사람들의 지혜와 성숙함을 믿습니다.

우산 아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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