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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일국양제’ 묘수, 시진핑에겐 악수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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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의 직장 여성 재클린 천은 그날도 평소처럼 우산을 들고 나왔다. 9월 말이면 홍콩의 우기(雨期)가 끝날 무렵인데도 예고 없이 수시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천은 “이 우산을 경찰의 최루액 분사와 물대포 세례를 막아 주는 방패로 사용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선거를 요구하는 홍콩 도심 점거 시위에 처음으로 동참하던 지난달 28일의 일이었다. 그 이후에도 아스팔트 도로에서 연좌농성 중엔 유용한 햇빛 가리개로, 때로는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펼쳐 드는 퍼포먼스용 소품으로…, 이렇게 우산은 다용도로 쓰였다. 그래서 나온 ‘우산혁명’이란 기발한 작명은 필경 서방 언론 누군가의 작품일 것이다.

목하 세계의 시선이 홍콩에 쏠려 있다. 2017년 홍콩의 행정장관 직선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홍콩이란 일개 지역의 문제에 국한된다면, 우산혁명이 이렇게 세계의 주목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홍콩에선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서방 국가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전선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난 6월 백서에 ‘무늬만 직선제’ 예고
홍콩 시위대가 요구하는 건 완벽한 서구식 자유 보통선거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가치다. 반면 중국 정부가 볼 때 서구식 선거는 반드시 막아야 할 국가적 위험요인이다. 13억 인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서구식 자유선거가 허용되면 국가 분열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구식 제도와 가치가 반드시 우월한 건 아니며 중국에는 중국의 길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게 바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다. 일국양제는 필요 최소한의 곳에서 시행되는 장치다. 많은 분석가는 ‘우산혁명’의 향방을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미래, 더 나아가 중국이란 거대 국가가 어떤 길로 나아갈지의 선택과 결부 짓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0일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이란 제목이 붙은 일종의 백서가 중국 국무원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그때까지 중국 정부가 단 한 번도 발간한 적이 없는 문서였지만 중국 언론에서도 그다지 크게 다루진 않았고 해외 언론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한자로 2만3000자 분량인 이 문서는 영어·프랑스어·아랍어·일본어 등 7개 언어로 번역문까지 실렸다.

이를 보도한 중국 매체의 기사는 “일국양제의 실천은 국가 주권 수호와 안보 및 발전, 홍콩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에 이익이 된다”는 식의 원론적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문구 하나하나에 막중한 의미를 갖는 표현들이 포함돼 있었다. 우선 “홍콩의 관할권은 전면적으로 중앙정부가 보유한다. ‘고도의 자치권’은 중앙정부가 부여하는 만큼만 누릴 수 있으며 그 이상의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방점은 뒤 문장에 있다. 중앙정부가 허용하지 않는 권한 속에 홍콩 주민이 지도자를 서구식 자유 선거로 뽑을 수 있는 권리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백서는 또 이렇게 못 박고 있다. “일국양제의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태까지는 ‘일국양제’를 거론할 때 ‘일국’보다 ‘양제’에 무게를 두는 게 일반적인 관점이었는데 중국 정부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를 공표한 중국 정부의 상황 인식은 뒤따르는 문장에서 읽을 수 있다. “일국양제가 홍콩에서 실현되는 과정 중 새로운 상황과 문제들에 직면했다. 홍콩 사회의 일부 홍콩인은 일국양제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략) 홍콩에 장기적으로 누적돼 온 깊은 모순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홍콩 사회 소수의 사람이 외부 세력과 결탁해 내정 간섭 및 사회 안정을 해치는 행위를 방지해야 한다.” 그러니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산혁명 운동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소수 홍콩인’이 일으킨 소란에 불과한 셈이다.

지금 우산혁명 시위의 초점인 2017년 행정장관 직선제의 입후보 자격 제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원칙도 이 백서에 담겨 있다.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를 뜻하는 ‘항인치항(港人治港)’과 관련, “애국인사를 주체로 한 항인치항이 이뤄져야 한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을 인용하며 “항인치항에는 한계와 기준이 따른다”고 명확히 했다. 이 백서가 발표된 직후에 만난 중국인 변호사 J씨는 “중국 정부의 홍콩 정책이 계속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번 백서를 보곤 깜짝 놀랐다”며 “앞으로 큰 논란이 일어날 게 틀림없다”고 말한 기억이 새롭다. 아니나 다를까, 9월 들어 대학가에서 동맹휴업이 시작됐고 뒤이어 교과서를 접고 우산을 펼쳐 든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지금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일국양제는 오늘날의 G2 중국의 기초를 닦은 덩샤오핑의 작품이다. 1980년대 초반 “홍콩을 되찾지 못하면 장차 조종(祖宗)을 볼 면목이 없다”던 덩샤오핑은 일국양제란 절묘한 해법으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설득할 수 있었다. 중·영 간의 협정에 따르면 97년으로 조차 기한이 끝나는 지역은 가장 나중에 조차한 신계(新界)지역에만 국한돼 있었고, 홍콩의 알맹이라 할 수 있는 홍콩섬과 주룽(九龍)반도는 조차가 아닌 할양지로 기한이 없었다. 덩샤오핑은 홍콩 주권 반환 이후에도 50년간 자본주의 제도에 바탕해 국방·외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를 시행한다고 약속함으로써 84년 홍콩반환협정을 맺고 신계뿐만이 아닌 홍콩 전체를 반환받는 데 성공했다. 97년 반환을 앞두고 한때 캐나다를 비롯한 ‘안전한’ 서구 사회로 이민을 갔던 홍콩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 반환 전이나 후나 홍콩인들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완벽하게 보장된 일국양제 덕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홍콩을 직접 통제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7월의 국민교육 파문이 대표적이다. 당시 의무교육 과정에 ‘도덕 및 국민교육’ 과목을 신설하려 함으로써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시위대는 국민교육은 중국 정부의 ‘세뇌교육’과 다름없다고 반발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그때의 주도자가 지금 우산혁명 주도세력 가운데 하나인 학생운동 단체 ‘학민사조(學民思潮)’의 대표 조슈아 웡(17)이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에 들어와서는 홍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중국 정부의 홍콩 백서 발표가 그 대표적 사례다. 중국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는 것과 비례해 홍콩인들의 반중 정서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이 대립의 핵심은 일국양제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국을 중시하는 게 중국 정부라면 양제를 중시하는 게 홍콩 민주세력의 입장이다.

홍콩 시위는 홍콩 땅 안에서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란 점에 중국 정부의 고민이 있다. 쩡위청(曾鈺成) 홍콩입법회 회장은 “중앙정부의 홍콩 정책 기조는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에는 장기적 번영과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시진핑 체제에선 국가의 주권과 안전 수호란 부분이 추가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이것이 대만과 소수민족 문제, 나아가 중국 본토 전체의 정치 개혁 논란과 연관돼 있는 이슈로 보기 때문이다.

반환 후 17년간 모순 쌓이고 쌓여
시 주석은 지난달 26일 베이징을 방문한 대만 인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과 대만이 통일할 때는 일국양제 방식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며 “국가 통일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끌 역사적인 필연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취임 이후 이런 해법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홍콩식 모델을 적용해 자본주의 체제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대만과 통일한다는 목표를 드러낸 말인데, 여기서도 방점은 ‘일국’에 있다고 봐야 한다. 만약 ‘우산혁명’ 사태로 홍콩 문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 중국 정부의 통제가 약화되고 혼란이 가중될 경우엔 대만과의 통일을 추진하는 데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중국 정부가 누누이 밝힌 바와 같이 “입후보 자격에 제한이 없는 완전한 보통선거를 허용할 수 없다”는 건 중국 정부로선 마지노선이다. 만약 홍콩에 이를 허용할 경우 중국의 소수민족자치구나 자치주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분리독립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티베트·신장은 물론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여타 소수민족 자치지역에서까지 “우리도 홍콩처럼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겠다”고 요구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의 불똥이 중국 본토로 튀어 서구식 자유 보통선거 요구가 중국에서 일어나는 건 베이징 당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홍콩 시위 소식이 본토로 전파되지 않도록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 인적 왕래까지 통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다. 급기야 국경절 연휴를 맞아 홍콩을 방문하려는 중국인들에 대해 통행증(홍콩 방문 비자 역할을 하는 서류) 발급을 제한하고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파급 효과를 감안하면 홍콩 ‘우산혁명’ 사태의 원만한 수습은 베이징 당국에 큰 도전이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어마어마한 파문이 일어나게 돼 있어 중국 당국은 수습방안 마련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홍콩 반환 이후 지난 17년 동안 일국양제란 이름으로 안정을 유지해 오는 동안 물밑에서 쌓인 모순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중국 정부와 “홍콩은 중국 본토와 다르다”고 강조하는 홍콩 민주세력 사이에는 좀처럼 좁혀지기 힘든 간격이 존재하고 있다.

홍콩=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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