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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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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국가재정 5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요지는 복지와 국방 분야에 대한 재정 지출을 늘리고 대신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는 것이다. 성장을 포기하고 분배를 중시했다는 비판론에 가세할 생각은 없다.

정부도 성장동력으로서 SOC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충분한 SOC 시설 공급을 위해 재정을 대신해 민간자본을 적극 유치한다는 대책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SOC 시설 공급을 민간자본이 주도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1994년 민자유치제도가 도입된 이래 SOC의 건설과 운영에 민간부문이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150여 개의 국가 및 자치단체 민자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신공항 고속도로, 천안~논산 고속도로 등 완공돼 운영 중인 사업도 있다. 그러나 민자 고속도로의 통행료 논쟁에서 볼 수 있듯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민간자본의 속성상 시설 사용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자사업은 고속도로와 같이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추진돼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민자사업은 민간이 건설위험과 시장위험을 안고 투자비를 사용료 징수를 통해 회수하는 BTO 방식으로 추진돼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침체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BTL 방식의 민자사업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BTL 민자사업에서 걱정되는 측면도 있다. 임대료의 형태로 사업 수익률이 보장된다면 사업자가 건설 또는 운영 단계에서 비효율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지급금의 일부를 성과에 연계시킨다면 정부와 사업자의 이해 상충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완책이 강구되기 어려운 사업들은 대상에서 배제돼야 할 것이다. BTL 사업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국채 이자율 이상의 사업 수익률을 보장해 줄 바에는 국채를 발행해 국가가 직접 사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또한 BTL 사업은 민간의 선투자비를 분할하여 상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문제점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BTO 방식은 사업성이 있고 사용료 수준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 시설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하며, BTL 방식 역시 일시적으로 재정수요를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재정부담을 오히려 늘리는 측면이 있다.

사회복지를 위해 SOC 재정투자를 축소하고 민자사업을 촉진한다는 논리도 명쾌하지 않다. 민자 유치 확대를 통한 SOC 공급은 저소득층과 지역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정투자를 통해 SOC를 공급하게 되면 그 자체로서 국민복지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또 SOC 건설과정에서의 높은 고용창출 효과와 완공 뒤의 생산비용 절감효과는 일자리 제공과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게 된다.

아직도 우리나라 SOC 시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위권 수준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SOC 공급에 있어 민간자본은 재정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 재정이 주도하는 SOC 투자는 성장 잠재력 확충과 지속 가능한 복지정책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다.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