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문학 100권 읽히기' 교육혁명 기폭제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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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초등학교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12년간 인문학 권장도서 100권을 학생들에게 읽히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사들에게도 인문학 독서 연수를 시키고, 신임 교사 선발 때 인문학 면접도 실시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학생 입장에선 매달 한 권씩만 읽어도 100권은 채울 수 있으니 그의 말이 무리해 보이진 않는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탐욕을 절제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인문학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

지식기반사회의 필수도구인 창조성을 키우는 데도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인데, 이걸 우 교육감이 제대로 포착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인문학 고전 읽기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학부 중심 대학은 물론 연구 중심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인문학 도서 읽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수준의 학생들이 다니던 미국의 시카고대를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만든 건 1929년 로버트 허친스 총장이 시작한 ‘시카고 플랜’이었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인문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야 졸업시키는 시스템이다. 시카고대학 졸업생, 교수, 연구원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89명이나 된다.

 참여 인원만 대구지역 초·중·고교 32만 명이라고 한다. 이런 대규모 인원이 인문학 도서 100권 읽기 운동에 나서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다른 지역은 물론 대학으로도 인문학 고전 읽기 열풍이 확산되길 바란다.

 하버드대는 학생들에게 읽힐 고전 100권을 고르는 데 1년 이상 공을 들였다고 한다. 대구시교육청도 양서를 고르는 데 각별히 공을 들였으면 한다.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도서를 선정하고, 독서를 어렵게 하는 환경도 이번 기회에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구교육청의 신선하고 파격적인 실험이 낡은 교육 풍토를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