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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클래식은 가라" 유쾌한 악몽 같은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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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음악으로 배꼽 잡는 웃음을 선사하는 이색 듀오인 피아니스트 주형기(오른쪽)와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세이 이구데스만. 다음 달 하순 통영국제음악제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사진 줄리아 웨슬리]

뉴욕필하모닉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LA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들 악단과 협연했다면 떠올릴 연주자 유형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르다. 모차르트와 영화 ‘제임스 본드’ 음악을 뒤섞고 무대 위에서 빗자루질이나 무술 시범을 보인다. 점잖은 악단 단원들도 괴이한 춤을 추게 한다. 말 그대로 ‘악몽 같은 음악(Nightmare Music)’ 콘서트다.

 바로 듀오인 피아니스트 주형기(41)와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세이 이구데스만(41)의 무대다. 2009년 거장 기돈 크레머와 내한해 배꼽 잡게 했던 이들이 10월 하순 통영국제음악제 참가차 한국을 찾는다. 5년 만의 ‘악몽’인 셈이다.

 이들을 이달 중순 런던에서 미리 만났다. 러시아 출신의 이구데스만은 “한국어를 많이 하겠다”고 예고했다. 먼저 이구데스만과의 대화다.

 - 12살 때 음악학교인 에후딘 메뉴인 스쿨에서 처음 만났을 땐 둘 사이가 안 좋았다고 들었다.

 “내가 싫어했다.(웃음) 하루는 형기가 생선튀김 요리를 들고 내 방으로 찾아왔더라. 그때 대화하다 굉장히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린 클래식 음악이 너무 경직됐다고 느꼈는데 같이 연구하다 모차르트나 하이든·브람스 시기엔 콘서트가 훨씬 자유로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당시 관객도 음악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중간에 움직일 수 있었고 대화도 했다. 중간중간 박수도 많이 쳤다.”

 - 당신들의 콘서트와 비슷하다.

 “맞다.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참신하다고 하지만 일종의 ‘레트로’(retro·복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때보다 정교하게 만든다. 구조화하고 극적 요소와 유머를 가미한다. 우린 자라면서 안톤 체호프,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작품을 다 읽었다. 셰익스피어 것도 대개 다 읽었다. 분명한 건 우린 음악을 가지고 웃음을 주지만 음악 자체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진 않는다.”

 -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고 배우이며 영화감독이라고 알려졌는데 당신의 진짜 직업은 뭔가.

 “요리사다(웃음). 닭볶음탕이나 김치찌개를 잘 만든다. 나의 음악적, 아니 요리 과제는 나만의 고추장을 만드는 거다(웃음). 사람들에겐 여러 면이 있다. 연주자들도 그렇다. 올해 마지막날 비엔나에서 ‘탁월한(Xtraordinary) 음악가 동맹’이란 공연을 하는데 연주자들이 놀라운 재능을 보일 거다. 바이올리니스트면서 곡예를, 또 불 쇼를 하는 이도 있다. 플루트 연주자인데 비트박서도 있다.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는 그 모든 것이며 그 이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주형기는 성(Joo)의 발음이 유대인(Jew)과 비슷하다. 그래서 ‘지구상 유일한 한국인이자 유대인’이라고 농담하곤 한다. 그와의 대화다.

 - 재미있을 수 있는 비결은 뭔가.

 “스스로 한국인으로 느끼고 나의 성정도 피도 언어도 한국인이고 매일 김치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한국인처럼 사고하진 않는다. 이런 긴장 속에 유머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외로울 수 있었다.”

 - 듀오 덕분에 관객들이 음악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물론이다. 사람들이 좀 더 창의적이 되도록, 또 음악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싶어지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게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

 서로 친구면서 10년째 듀오를 함께해온 두 사람에게 “관두고 싶을 때는 없었느냐”고 물었다. 주형기의 대답은 이랬다. “화날 때도, 같이 있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전화해서 ‘뭐해? 저녁 먹으러 갈까’라고 한다. 형제 같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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