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드문 비경의 호반길 따라 자전거 여행, 전남 순천 '주암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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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없고 한적한 호반길. 너무 길고 적막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다.

조계산(884m)이 명산으로 꼽히는 것은 부드러우면서 굴곡이 있는 산세도 좋지만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송광사와 선암사라는 명찰 덕분이 아닌가 싶다. 바로 이웃해 있고 더 높은 모후산(920m)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송광사로 가는 길목, 조계산과 모후산 사이에 펼쳐진 산중호수가 주암호다. 1991년 완공된 주암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댐이라야 높이 57m, 길이 330m 정도여서 이 작은 둑으로 저렇게 큰 호수가 생겨났다는 것이 신통스럽다. 인공호수의 크기를 재는 저수량을 보면 주암호가 4억5700만t으로 전국 1, 2위의 소양호(29억t)나 충주호(27억t)에 비해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막상 실제 눈으로 보는 호수는 폭이 1㎞가 넘고 주변에는 산밖에 보이지 않아 거대하고 깊숙한 느낌을 준다. 주암호가 생기면서 49개 마을 1만2750명의 이주민이 생겨났다니 작은 댐으로 인해 빚어진 자연과 인간의 변화가 대단하다.

신기한 것은 또 있다.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산중호수가 관광자원으로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처에 송광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람선이나 수상 레포츠는 아예 볼 수 없다. 주암호 물을 상수원으로 쓰기 때문인데, 그 덕분에 맑은 수질과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적막한 호반길과 1400년 고찰

1. 주암댐은 높이 57m, 길이 330m 정도인데 이 작은 둑으로 저렇게 큰 호수가 생겨났다는 것이 신통하다. 2. 서재필기념공원과 송광사 사이 호반길에 있는 고인돌공원. 순천·화순·고창 일원은 세계 최고의 고인돌 밀집지대다. 3. 호반길에서 대원사로 이어지는 5km의 벚나무 가로수길은 운치가 넘친다. 4. 티벳 분위기가 물씬한 대원사도 틈나면 꼭 들러볼 만하다.

주암호가 자전거 여행지로 특히 소중한 것은 이처럼 아름답고 조용한 호수를 가까이서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호반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동차는 거의 다니지 않고 다닐 필요도 없는 외진 흙길에, 고개 하나 넘으면 고즈넉한 산사도 만날 수 있다. 적요한 산중 호반길의 풍광은 충주호 호반길과 함께 쌍벽을 이루지만 훨씬 덜 알려져 있어 한층 조용하고 한적하다.

호반길은 주암호의 서쪽 모후산 자락을 끼고 돈다. 조계사가 있는 동쪽 호반에는 송광사와 고인돌공원, 서재필기념공원 같은 명소가 모여 있고 15번, 18번, 27번 세 개의 국도 노선이 지나가서 차량통행이 많지만 모후산 쪽 호반에는 이 좁고 무심한 흙길만 한 줄기 나 있을 뿐 민가마저 드물다.

호반길에 들어서면 가끔 민가가 나오지만 인적은 거의 없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 궁전모텔에서 8㎞ 정도 들어가면 포장로가 끝나고 비포장길이 시작된다. 후곡리까지 비포장길은 9㎞ 가량 계속된다. 순천대학교 수련원이 있는 후곡리에서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시작되면서 사실상 조용한 호반길이 끝난다. 도로를 따라 신평교를 건너 호수 동쪽의 국도를 통해 출발지로 돌아가도 되지만 여기서는 서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는 비포장길을 소개한다.

후곡리 마을 옆에 후곡제라는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를 기준으로 저수지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은 높이 350m 정도의 고개를 넘어 앞서 지나온 호반길 중간으로 연결되고, 저수지 오른쪽 길은 막거리재(460m)를 넘어 화순군 유마리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유마리로 향한다.

저수지에서 4㎞ 남짓 힘든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 것이 고비다. 힘들게 고개를 오른 보람은 막거리재에서 유마사를 거쳐 다시 호반에 이르기까지 10㎞의 시원한 내리막길이 보상해 준다. 막거리재를 넘어가면 마치 산수화처럼 아늑하고 그윽한 유마리의 산간풍경이 기다린다. 유마리 골짜기 안쪽에는 그리 유명하지는 않으나 분위기 좋은 유마사가 1400년을 앉아 있다. 백제 무왕 때인 627년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과 그의 딸이 창건한 고찰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근래에 중건되었다.

막거리재 이후부터는 10㎞ 가까운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유마사 옆의 산정마을에서 주암호까지 6㎞는 아스팔트길이다. 이 길은 복교리의 주산2교 앞에서 15번 국도와 합류한다. 국도에서 좌회전, 1.5㎞ 가면 앞서 호반길 초입 삼거리이고, 3.5㎞ 더 가면 출발지인 서재필 기념공원이다. 코스 총연장은 38㎞이고 비포장과 막거리재 같은 높은 고개가 있어 4시간은 잡아야 한다. 고요한 호반길의 낭만, 험준한 산악코스의 스릴과 신나는 내리막까지, 주암호 호반길은 입체적인 즐거움이 가득하다.

코스 : 서재필기념공원→15번 국도 화순 방면→대원사 입구 삼거리→복교→순천대학교 부속 학술림 방면 우회전→월산리→후곡리(순천대 연수원 입구)→막거리재→유마사 입구→산정마을→15번 국도(좌회전)→서재필기념공원. 38km 4시간 30분.

여행 메모 : 서재필기념공원으로 가장 빠르고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호남고속도로 주암IC에서 나와 보성 방향 18번 국도를 타는 것이다. 주암IC에서 20㎞. 호반길에 들어서면 식당은 일일레저타운 밖에 없으므로 행동식과 식수를 충분히 챙긴다. 호반길은 평이해서 초보자나 생활자전거로도 무리가 없으나 먹거리재를 넘을 생각이라면 산악주행 경험이 있어야 한다.

글= 김병훈 월간 자전거생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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