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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개혁에 필요한 유시민의 경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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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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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소란을 보면서 2006~2007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성공시켰던 국민연금 개혁이 생각났습니다. 연금 개혁은 궁극적으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적 내용을 준비했더라도 대통령과 해당 장관, 집권당이 정권을 잃을 각오로 달려들지 않으면 성사시킬 수 없는 게 연금 수술이죠.

 공무원연금의 자산 규모는 국민연금에 비해 아주 작지만 법령과 세금을 쥐고 흔드는 공무원의 집단적 영향력 때문에 손보기가 어렵습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공무원의 나라는 영속합니다. 흔히 공무원이 영혼이 없다고들 하는데 자기 이익이 침해받는 경우 영혼은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도 공무원연금에 손을 못 대거나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공무원연금을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이 고쳐보겠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 개혁, 공공기관 개혁을 외쳤지만 감동이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용이 추상적이고 복잡하고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죠.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권에 위험합니다. 하지만 단순하고 성패가 분명하게 나타나며 혁신의 파급력이 크다는 점에서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정치혁신은 자기를 먼저 희생하는 솔선수범, 그 도덕적 힘에서 나옵니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의 기득권부터 확실하게 깼다는 솔선수범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의 복지부 장관 시절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개혁을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실패했는데 비전과 확신, 집념과 지략, 협력과 희생이 관건이었습니다.

 -당시 연금개혁을 왜 해야 했나.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2040년 인구 예측치를 그림으로 봐 보라. 원자폭탄 터질 때 생기는 버섯모양처럼 중간까지는 긴 막대 모양으로 가늘고 윗부분은 넓게 퍼져 있다. 고령인구가 압도적이다. 그들이 지금 수준으로 연금을 받아간다면 재정 전부를 쏟아부어도 모자라게 된다. 지금 우리 세대가 바꿔야 한다. 그걸 안 하면 나를 싸가지없는 정치인이라고 욕하는데… 우리 세대야말로 싸가지없는 세대로 기록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했다.”

 -국민연금 개혁을 어떻게 성사시켰나.

 “국민연금을 개혁한다고 이익 보는 사람은 없다. 개혁의 에너지가 없었다. 말하자면 바다에 떠 있는 무동력선인데, 이 배를 움직일 예인선이 필요했다. 그래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효도연금법(기초노령연금법)을 끼워 ‘연금 3법’을 패키지 입법안으로 내놨다. 전국의 노인 세력이 움직이면서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핵심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다. 막판엔 야당(당시 한나라당)이 연금3법 중 국민연금법안만 부결시켰다. 내가 책임을 지고 장관직을 내놨더니 동정 여론이 크게 일어나더라. 내가 사퇴한 뒤 석 달 뒤 국민연금법 수정안이 통과됐다.”

 -공무원연금은 왜 실패했나.

 “국민연금은 복지부 장관 소관이지만 공무원연금은 행정안전부(지금의 안전행정부) 소관이다. 내가 주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당시 박명재(현 한나라당 의원) 행안부 장관과 국무회의 참석하기 전에 언쟁까지 벌였는데, 박 장관은 노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소극적이었다. 글쎄, 임기 말에 공무원까지 들고 일어나면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노 대통령이 했던 것일까? 공무원노조가 나를 따라다니면서 ‘연금에서 손 떼라’ ‘유시민 물러가라’고 했고 참여연대를 비롯해 250여 개 시민단체가 ‘최악의 복지부 장관상’을 주기도 했다. 나는 그때 공무원노조한테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 다다음 정권에선 더 힘든 조건으로 연금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지 않나.”

 -공무원연금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공무원의 저항은 성공할 수 없다. 물 밖에 나온 고기와 같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무동력선이 아니다. 국민의 절대 지지를 받고 있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여당의 협조를 구하고 야당을 간곡하게 설득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반대해선 안 된다. 자기들이 정권 잡았을 때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다.”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