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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참다운 인간상 지향하면 누구에게나 선비의 길 열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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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호 23면

조선의 대표적인 선비와 선비군주로 불리는 윤두서(왼쪽), 최익현(가운데)과 정조(오른쪽). 윤두서(1668~1715년)는 윤선도의 증손으로 숙종 때 과거(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당쟁을 피해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과 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최익현(1833~1906)은 구한말 학자로 74세 때 의병을 일으킨 독립운동가다. 정조(1752~1800년)는 조선의 22대왕으로 왕정체제를 강화해 위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꼿꼿한 지조와 강인한 기개를 지닌 독서인. 유교철학이 설정한 이상적인 인간상(像)이 바로 선비다. 최고통치자인 왕도 이런 선비의 전형에서 벗어날 순 없다. 세종과 정조는 대표적인 선비 군주였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은 선비 리더십이 발휘된 국가였다. 벼슬길에 나갔건, 사림에 머물렀건 선비들은 당대의 공론의 장을 이끌었다. 이런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에 대한 뜨거운 토론의 장이 열렸다.

한국문화 대탐사 <27·끝> 선비정신과 미래 리더십

 지난 26일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아산서원 개원 2주년 기념 학술회의장. ‘선비정신과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선비정신을 통해 미래의 리더십을 찾으려는 열띤 토의가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관료사회의 적폐와 리더십 부재의 대안을 전통가치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한국인 74.5% “선비정신 중요”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선비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시작했다. “문명 교체기라 할 수 있는 개화기에 이르면 선비들의 의식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게 된다. 그들은 시대사조를 읽을 안목도 없었고 중화(中華)에서 서구로 눈길을 돌릴 의지도 없이 ‘갈라파고스 거북증후군’에 머물러 있다가 망국을 초래했다. 현재 우리 학계가 예찬하는 실학자들이야말로 몰락한 지식인들이다. 개화기에 동서 문명이 충돌할 때 실학자들은 그야말로 ‘풀잎 하나 움직일 바람’도 일으키지 못했다.”

 김석근 아산서원 부원장은 선비정신이 다시 부각된 때를 1960년대로 잡았다. 52년에 발표된 이희승의 수필 ‘딸깍발이’가 나온 이후, 조지훈 같은 고전적 교양을 갖춘 논객들이 지식인의 윤리적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 선비정신을 공론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대가 선비정신을 다시 불렀다”며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지식인들이 보여줬던 무능함과 현실 타협적인 처신은 전통시대의 꼿꼿했던 선비를 그리워하게 했으며 이런 경향성은 아직까지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된 설문조사도 공개했다. 아산서원이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74.5%가 선비정신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선비정신이 필요한 이유로는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들의 인격수양 부족, 엘리트층의 사리사욕 추구, 정치권의 잦은 분열과 갈등을 꼽았다. 김 부원장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선비정신을 빌어 해결할 수도 있다는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 선비의 몰락 이유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신복룡 교수는 우선 토지와 신지식 부족을 들었다. 자본주의가 시대정신으로 바뀌었을 때, 궁핍한 선비의 가치는 무기력했고 중화주의에 눈멀어 신지식을 능동적으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래 가난하면서 인의(仁義)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실’이라고 모질게 나무란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을 예로 들며 청빈, 곧 ‘착한 가난(good poor)’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선비에 해당하는 영국의 지주계급인 젠트리(Gentry)는 탄탄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지방 의원직과 치안판사 등을 독점했다. 뿌리 깊은 영국신사의 전통이 이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젠트리의 자격 요건으로 빚 없는 경제적 여유 존경 받을 만한 교육 품위 있는 생활 종교로 다듬어진 관용 사회 공헌 의지와 봉사 3대에 걸친 원만한 가족관계 등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소개했다.

종교·계층에 관계없이 선비 나와야
성리학자인 이형성 전주대 교수는 참다운 인간상을 지향하면 누구나 선비가 될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자의 제자들은 선비(士)에 뜻을 뒀지만 각기 다른 양상을 보였다. 안연(顔淵)은 학문을 좋아하면서 인(仁)을 어기지 않으려 했고, 증점(曾點)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이나 쐬며 시나 읊으려고 했으며, 자로(子路)는 용맹을 좋아하여 삼군(三軍)을 진두 지휘할 수 있었고, 자공(子貢)은 화식(貨殖)에 능하여 재물을 잘 축적했다. 우리 시대 선비상은 경제·과학·문화·종교 등에 걸쳐 훨씬 다양해야 옳다. 목사나 신부, 스님 가운데서도 선비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고정된 선비상은 없으며 ‘때에 따라 중도를 취하면 선비에 가깝다’는 수시처중(隨時處中)에 의미를 부여했다.

 유광호 연세대 교수의 주장은 논란이 컸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동서고금에 정통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했을 때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고(故) 이병철·정주영 회장 같은 창업자들도 ‘통유(通儒)’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유는 세상사에 통달하고 실행력이 있는 유학자에 붙이는 칭호다. 체(體)도 잘 갖추고 용(用)에도 능해야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객석의 한 노교수는 “현대사를 움직인 인물들이지만 통유라기보다 신(新)실학자라면 어떨까”라며 “선비의 덕목인 학문과 수신에는 다소 미흡한 면이 있었지만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며 리더로서 우선해야 할 바를 한 것은 큰 업적”이라고 말했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들어 “여말선초에 주자학을 받아들인 건 주자학이 송대 강남 농업혁명의 철학적 토대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성리학에 산업의 발달과 민생의 풍요를 꾀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측면이 있음에도 19세기 문명의 전환기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지 못한 건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본격적인 학술토론에 앞서 아산서원에서 교육을 받은 서원생들은 “동양고전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를 결합한 고전 중심 교육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공부하고 국궁과 국악, 서예는 물론 해외연수까지 했다. 우리 시대에 맞는 선비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들은 또 ‘청문(淸問)’이라는 아주 오래됐지만 매우 참신한 화두를 던졌다. 동양고전 『서경』에 나오는 이 말은 지도자가 마음을 비우고 백성에게 거리낌 없이 묻는 걸 뜻한다.

 미래에 리더가 될 서원생들의 청문은 또 있었다. ‘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 무엇인가’였다. 이날 학술회의는 “지금은 세계시민정신에 부합하면서도 한국인의 혼을 지닌 우리 시대 선비의 덕목을 제시해야 할 때이며 그것이 진정한 전통의 재창조”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중앙SUNDAY와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했던 문화대탐사는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그 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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