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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의 내가 멋져 보일 때 중독이 시작됩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스마트폰 중독, 질리도록 하면 낫는다? 나이가 들면 자제력이 생긴다? 생활에 지장이 갈 순 있지만 뇌를 망치는 건 아니다? 게임만 아니라면 스마트폰을 오래 써도 좋다?

이소영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것이 모두 잘못된 상식이라고 단언합니다. 이 교수는 많은 학생과 부모들이 스마트폰 중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로서 ‘스마트폰 뺏어? 말아?’ 대국민 공개강좌를 여는 등 청소년 정신건강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그를 소년중앙이 만났습니다.

―스마트폰 중독도 병인가요.

“중독은 술·담배·마약과 같은 물질중독과 인터넷·게임·도박과 같은 행위중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중독에 빠져드는 과정이나 뇌의 반응은 유사해요. 스마트폰 중독은 행위중독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 중독은 도박 중독과 다를 바 없는 셈이죠.”

―하루에 몇 시간을 써야 중독일까요.

“아직 정확한 기준은 없어요. 하지만 24시간 중 몇 시간이 아니라, 여가 시간 중 얼마를 쓰는지 따져야 합니다. 또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한가, 얼마나 의존하고 있나 등을 살펴봐야죠. 중독(addict)의 어원은 ‘노예’입니다. 내가 스마트폰의 노예는 아닌지 한번 돌아보세요.”

―왜 무언가에 중독이 되는 걸까요.

“우리 뇌에는 쾌락중추가 있어요. 이곳에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스마트폰이나 술은 쾌락중추를 자극해 도파민 분비량을 늘려요. 하지만 스마트폰에 빠져들수록 자극에 둔감해져요.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뇌가 웬만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 거죠. 일상으로 돌아오면 지루하고 답답한 기분이 듭니다. 가령 수업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교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어져요. 결국 다시 쾌락을 느끼기 위해 스마트폰을 찾죠. 문제는 중독이 되면 뇌도 서서히 망가진다는 거예요.”

―뇌가 어떻게 변화하나요.

“무언가에 중독이 되면 ‘흥분을 추구하는 뇌’로 바뀝니다. 현실에 무감각해지고요. 알코올 중독자는 자기 때문에 가족이 고생하는 걸 몰라요. 감각이 떨어져서예요. 하물며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에 중독된다면 어떻겠어요. 점점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심하면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평생 스마트폰만 하며 살려고 할 수도 있죠. 삶이 엉망이 되는 거죠.”

―왜 청소년이 스마트폰 중독에 더 취약한가요.

“일단 학계에서는 ‘중독이 잘 되는 뇌’가 있다고 봅니다. 아직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의 뇌는 조절 기능이 떨어져 중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술이나 담배는 청소년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지만 스마트폰은 초등학생들도 하나씩 들고 다니고, 학원과 학습에 바빠 스마트폰 외에 다른 놀이를 즐길 시간이 없는 등 환경적 이유도 있습니다.”

―스마트폰 중독의 폐해는 무엇인가요.

“우선 건강이 나빠져요. 대표적인 질병이 스마트폰을 장시간 들여다보느라 목뼈에 변형이 오는 거북목 증후군이죠. 손가락이 휘거나 손목에 이상이 온 환자도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인한 수면장애 때문에 학교에서 졸고, 자연히 학업 성적은 떨어지고,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혼나는 등 갈등을 빚게 되죠. 그 밖에도 다양한 심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어떤 문제들이 있나요.

“사실 스마트폰 중독으로 병실을 찾는 아이들은 낮은 집중력, 우울증·강박증이나 부족한 사회성,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문제들도 함께 안고 옵니다. 쉽게 중독되는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존감(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낮다는 거예요. 스마트폰이 해악을 미친다 해도 상관 없으니 내 인생쯤이야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죠.”

―스마트폰이 있어야 친구를 잘 사귈 수 있다고도 하는데요.

“주로 일상에서의 대인관계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남의 얼굴을 보지 않고 소통하는 걸 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가상공간에서의 자신을 현실의 자신보다 멋지게 여기는 순간 중독이 시작됩니다. 평소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스마트폰이 있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현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독자의 가장 큰 특징은 ‘합리화’와 ‘부정’이에요. 술에 취한 사람이 ‘나 안 취했어’라고 하는 것처럼, 중독자들은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또 언제든 의지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리화하죠. 나아가 다른 현실, 자신의 인생까지 부정합니다. 따라서 먼저 올바른 자기인식과 현실인식이 필요해요. 나는 누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깨닫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잘 보내는 법을 배워야죠. 물론 애초에 이게 가능했다면 중독에 빠지지도 않았겠지요. 이 경우 행동교정이 필요합니다.”

―행동 교정은 어떻게 하나요.

“사용 시간을 정해놓고 통제된 환경에서 스마트폰을 쓰거나, 상대적으로 기능이 떨어지는 알뜰폰으로 활용도를 낮추는 거예요.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다 같이 집에 온 다음에는 바구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전화가 올 때만 확인하는 것도 좋고요. 절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애초에 친구들이 다 갖고 있으니 나도 사달라며 조르지 말고, 사용 연령을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어요. 스스로 절제할 힘이 있을 때 사용을 시작하는 거죠. 저는 최소한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이 유일한 오락인 경우도 많은데요.

“마땅한 놀이 문화가 없다는 게 큰 문제죠.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고요. 일단 가정에서부터 합심해 스마트폰 없이도 즐거운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가족간 대화가 필수겠죠. 잘 되지 않는다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중독 되면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요.”

―인터넷 중독 치료법은 많지만 스마트폰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인 듯합니다.

“해외 학회에 나가 보면, 인터넷 중독 관련해선 한국 학자와 의사들이 연구를 선도하고 있어요.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온갖 부작용을 먼저 겪었으니까요. 사실 인류가 생긴 이래 한 사람 당 하나씩 24시간 스마트폰을 갖고 살아 본 역사가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몰라요.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71.6%)인 우리나라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청소년들이 최대 피해자고요. 폐암에 걸린 사람들이 담배 회사에 소송을 걸듯, 10~20년 뒤엔 스마트폰 제작사에게 집단 소송을 거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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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경희 기자·김대원 인턴기자 ,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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