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에 정권교체 문건 해명 요구"

중앙일보

입력

북한.미국.중국 등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조인 당사국이 50년 만에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공포가 중국을 짓누르는 가운데 23일 베이징(北京)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台)에서 3국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회담 첫날 회의를 열고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사스 때문에 회담이 중도에 무산될지 모른다는 풍문이 한때 기자들 사이에 나돌 정도로 이날 회담에서도 사스는 '위용'을 떨쳤다. 댜오위타이 주변은 평소처럼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고, 정문 주위에서는 대표단의 조그만 행적이라도 찾기 위해 각국 취재진이 열띤 경쟁을 벌였다.

이근 북한 외무성 미주담당 부국장,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푸잉(傅瑩) 중국 외교부 아주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여한 첫날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은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북한은 "핵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생존권 위협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면 핵개발에 대한 미국 측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최근 미국 언론에 보도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북한 정권 교체' 문건과 관련, 북한 측이 미국의 해명을 요구하며 반발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쟁점인 한.일 양국의 회담 참여 문제에 대해 미국 측은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핵문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 차관보는 3자 회담은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본회담에 앞선 '예비단계(preliminary step)의 회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서방 외교 관계자가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은 핵문제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에 의해서만 해결될 사안이라는 기존의 '직접 협상'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이 현안에 대해 논란을 벌이는 과정에서 주최 측인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면서 회담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중재 노력'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안에 대한 양측의 의견 개진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오전 9시30분(현지시간)쯤 시작된 첫날 회담은 3국 대표단이 오찬을 회담장에서 한 후 협의를 속개해 오후 3시30분쯤 회담을 마쳤다. 3국 대표들은 이어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 부(副)부장이 주최한 만찬 회동에 참석했다. 앞서 중국 측 대표인 푸잉 국장은 22일 저녁 북한 대표단과 만찬 회동을 한 데 이어 23일 오전에는 미국 측과 조찬 회동을 하고 사전 조율 작업을 했다.

한편 중국을 공식 방문 중인 조명록(趙明祿)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켈리 미 대표는 이날 잠시 같은 장소에 머물러 둘 사이에 모종의 의견교환이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趙부위원장이 머무는 댜오위타이에 이날 오전 7시50분쯤 켈리 차관보가 중국의 푸잉 대표와 조찬 회동을 하기 위해 도착했기 때문이지만 확인은 되지 않고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