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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달러' 왔다 … 요동치는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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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근 가파른 달러 가치 상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달러가 더 강세를 띠면 미국 경제 성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윌리엄 더들리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22일 뉴욕 맨해튼에서 블룸버그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재무부 소관인 달러 가치에 대해 연방준비제도(Fed) 고위 관계자가 공식석상에서 언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최근 달러 강세가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24일 세계 금융시장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38(0.45%) 오른 85.15로 마감됐다. 이는 2010년 6월(88.47)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달러인덱스는 유로·엔·파운드·캐나다달러·크로네·프랑에 대한 달러의 평균 가치를 나타내며 이 수치가 커질수록 달러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걸 뜻한다. 이 지수는 지난주까지 10주 연속 오르며 1973년 달러인덱스가 나온 이후 최장기 상승 기록(9주)도 갈아치웠다.

 달러 강세로 최근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6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유로화 가치는 1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주요 32개국 가운데 6월 이후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가 상승한 나라는 중국·태국 등 6개국에 불과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조기 금리 인상)와 경상·재정수지의 구조적 개선으로 80년대와 90년대 1·2차에 이어 3차 달러 강세, 즉 ‘수퍼 달러’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미국·유로존·일본 3대 경제권의 경기상황 차이가 상반된 통화정책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돈을 풀어온 미국은 이제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자 돈줄을 죄려 하고(양적완화 축소와 금리인상) 있는 반면 아직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과 일본은 돈을 더 풀려고 하고 있다.

 미국은 1분기에 계절적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이 -0.5%였지만 2분기에는 1%로 오르며 경기회복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유럽은 1분기 0.2%에 이어 2분기에도 0%를 기록해 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4일 리투아니아 경제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책목표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비전통적 부양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일본도 1분기 1.5% 성장했던 경제가 소비세가 인상된 2분기엔 -1.8% 후퇴하며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통화당국은 추가적인 통화 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형중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금 달러화 강세는 미국과 다른 선진국 간 통화정책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선진국 간 통화정책의 균형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강달러’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수퍼 달러’는 세계 환율시장뿐만 아니라 상품시장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금·밀·원유 가격은 최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금값 하락세가 10주 이상 지속되고 있고 밀값은 지난주 말 4년2개월 만에 최저수준까지 떨어졌다. 성진호 우리선물 연구원은 “대체투자상품인 금을 팔고 안전자산인 달러를 사려는 시장 성향 때문에 지난 22일 금값은 트라이온스당 1216.60달러로 마감하며 8개월 만에 최저치를 보이기도 했다”며 “미국산 밀도 달러가치 강세로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면서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는 신흥국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달러 강세가 본격화되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자본이 신흥국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추석(9월 11일) 이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1조2700억원에 달했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 달러 강세 때 신흥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사례가 많다”며 “3월 이후 신흥국 증시에 쏠렸던 자금은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이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병현 동양증권 연구원은 “달러 가치 상승이 미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부분이 크다면 결국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경기와 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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