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차원서 '문화재 환수국'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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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이 국제 문화재 범죄조직에 의해 약탈당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 유물 중 일부가 벌써 세계 예술품 시장에 나돌고 있다는 얘기마저 있을 정도다.

사실 우리 사정도 비슷하다. 나라가 외세에 시달리던 과거사를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15일 국회 문광위에서 한나라당 김병호 의원이 "개인 소장품이 아닌 박물관.대학 등에 보관 중인 우리나라 해외 유출 문화재가 20개국 7만5천2백66건"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물론 이 숫자가 이날 처음 발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아이슬란드 등은 수십년간 문화재 환수를 위해 노력해 결실을 봤다"며 "우리도 문화재청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문화재 환수국을 설치해야 한다"는 김의원의 주장은 주목을 받았다. 그간 문화재 환수는 국제법 저촉 등을 이유로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재 환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민간에서 먼저 제기됐다. 2000년 '외규장각 도서 등가교환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프랑스와 우리 정부 간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에 대해 비판해 왔다.

1998년 초 프랑스가 정부 베이스로 진행되던 협상을 민간 문화 전문가 사이의 협상으로 바꾸자고 제안해 협상의 구속력을 민간 교류 수준으로 낮추고, 우리 정부는 전략 없이 대처해 '무조건 반환'을 요구하지 못한 채 다른 문화재와 맞교환하자는 프랑스 주장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조교수는 "외규장각 도서 약탈이 문화재 훼손과 약탈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헤이그 규칙이 성립된 1907년 이전에 이뤄졌다고 해서 보호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프랑스도 1차대전 후 승전국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1870~71년 약탈당한 문화재를 독일에서 되돌려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현재 해외유출 문화재는 일본 천리대(天理大)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안견의 몽유도원도, 파리 국립도서관의 '직지심체요절''왕오천축국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백자진사포도문호'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7만5천여점이라는 해외 문화재의 숫자도 신문기사와 해외공간 자료 수집을 종합한 추정치로만 알려져 있고, 환수 조치도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환수된 문화재는 4천5백여점이며 그나마 절반이 넘는 2천5백여건이 민간 차원의 기증으로 이뤄졌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우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외국 박물관과 협약을 하고 학술조사를 진행하며 도록집을 간행하고 있다. 2011년까지 계속될 이 작업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목적에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일부에서는 반환 운동보다 현지 한국관 설립을 통해 문화재를 해외에 알리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국관 설립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쉽지 않은 데다 상당수 문화재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경복궁 자선당의 소재를 파악해 반환받아 복원시킨 김정동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는 "문화재청에 환수국을 따로 두고 문화재연구소도 해외문화재 조사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등 환수 업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민간 단체는 문화재 환수를 위해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등 여론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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