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외환은 조기통합 … 야당 정치인 개입 암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이 새 암초에 부딪쳤다. 노사 간 힘 겨루기에 야당 정치인이 개입하면서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김기준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박원석 의원은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회견 내용은 정치와는 무관했다. “하나금융지주 주도로 진행되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조기통합 시도와 대량 징계 사태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특별검사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 의원은 금융위를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 소속이다. 하나·외환은행 통합은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이 통합에 제동을 걸고 나오자 금융위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국정감사를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다.

 이날 야당 정치인의 개입에 빌미가 된 건 지난 3일 노조가 벌인 조합원총회였다. 금융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하자 외환은행 노조는 이날 조합원총회를 영업시간에 열었다. 사실상 파업행위라는 회사의 경고에도 노조가 총회를 강행하자 사측은 참석한 외환은행 직원들을 징계에 회부했다. 총회 당일 주동자 29명은 바로 대기발령 조치하고 지점장 6명도 인사 이동시켰다. 나머지 898명은 오는 24일까지 일주일간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금융은 점포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산업인데, (자리를 비운 노조원들이) 잘못된 게 있지 않느냐는 경각심 차원의 징계”라고 언급했다.

 그러자 노조는 지난 15일 김한조 외환은행장 등 경영진을 서울지방노동청에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다. 그래도 사측이 꿈쩍하지 않자 노조는 재야단체와 정치권에 손을 내밀었다. 심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소집한 총회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900여 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을 해고하는 것은 부당 징계이자 적반하장식 탄압”이라며 “금융위원회가 이를 방관할 경우 국회 차원에서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에서 금융위를 압박하겠다는 얘기다. 이들 야당 정치인은 앞서 지난달 12일 외환은행 노조가 금융정의연대,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함께 국회에서 통합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도 참석했다.

 하나금융 측은 반발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징계는 아직 심의도 안 했는데 900여 명을 해고하려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개별 금융회사의 노사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나금융으로선 두 은행 통합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두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지난 3년간 내리 하향곡선을 그렸다. 게다가 2016년부턴 계좌이동제가 본격 시행된다. 주거래 계좌를 옮길 때 계좌에 설정했던 각종 자동이체를 함께 이동시키는 제도다. 공과금·급여 이체 등을 재설정하지 않아도 돼 은행 간 계좌 이동이 편해지면서 고객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두 은행 통합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금융계에선 은행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면 결국은 양측 모두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세대 성태윤(경제학) 교수는 “금융시장에서 기업 간 합병 문제는 금융감독과 공정거래상의 문제”라며 “노사 간 협상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정치권으로 가져가는 일이 반복돼선 금융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태화·심새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