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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교황 옆의 이 남자 … 한국 종교 지도자가 된 그리스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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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국내 12개 종교 지도자와 한자리에서 만났다. 당시 기념사진을 보면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띈다. ‘라소’라 불리는 검은 옷에 흰 수염을 가슴까지 길게 기른 서양인, 바로 정교회의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조그라포스(54) 대주교다. 한국 종교 지도자 모임에 그리스 출신 정교회 대주교라니, 대체 무슨 사연일까.

 그를 만나러 아현동 한국 정교회 대교구청에 갔다. 러시아 정교회도, 그리스 정교회도 아닌 한국 정교회라니.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만나자마자 “2000여 년 전 교회는 하나였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가톨릭이 생기고 여기서 다시 개신교가 갈라진 거라, 정교회가 초기 교회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해줬다. 전 세계 신도가 3억 명인데, 한국엔 3500여 명 있단다.

 한국 정교회의 시작은 1900년 서울 정동의 러시아공사관에서 성찬예배를 본 날로 친다. 그로부터 3년 뒤 공사관 옆 땅을 고종에게 하사 받아 성 니콜라스 성당(68년 아현동 이전)을 지었다. 이후 2004년 한국 정교회가 대교구청으로 승격하면서 한국에 대주교가 나왔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그리스 출신 소티리오스에 이어 2008년 2대 대주교에 올랐다.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과 12개 종단 국내 지도자가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교황 오른쪽)는 한국 정교회 지도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1998년 한국에 정착한 건 같은 나라 출신 소티리오스의 청 때문이었다. 한국에 온 후 영국 옥스퍼드대 신학과장 자리와 캐나다 대교구 대주교 제의를 받았지만 뿌리쳤다. 한국 정교회가 제대로 자리잡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교회는 단순히 신도 수 불리기 위한 선교는 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두죠.”

 그래서일까. 마포구 아현동 대교구청(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 주일 예배엔 꽤 많은 200여 명이 온다. 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축일인 부활절엔 1000여 명이나 몰린다. 아현동 말고도 전국 6개 성당과 2개 수도원이 있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그리스·불가리아어과 교수이기도 한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한국 대학생에게 쓴소리를 했다.

 “모든 면에서 미국인을 닮으려고만 해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 예술·문화를 더 사랑했으면 해요.”

만난 사람=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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