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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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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세상의 모든 일은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한다.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과, 자신을 위해 일을 희생시키는 사람’이다. 꼭 자신을 희생해야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을 터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흔히 몸이 축나기도 하니(과로사를 생각해 보라) 큰 무리가 없겠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도 있지 않느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즐거울 때까지만 일하는 사람은 첫 번째 부류에 속하지 않으니 입을 닫는 게 낫겠다. 그래도 여전히 희생이란 말에 거부감이 든다면(특히 고용자들이 그렇겠지만) ‘사용’ 또는 ‘이용’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일을 위해 자신을 사용하는 사람과, 자신을 위해 일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희생이란 단어를 굳이 쓴 것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일을 이용하면 타인의 희생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닐 것 같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들 은근히 많다. 공공과 민간 구분 없이 그렇다. 자기 주머니 채우려고 할 일 대신 부정을 저지르는 공직자들은 국민을 희생시킨다. 강의실 대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는 학생뿐 아니라 유권자까지 농락할 수 있다. 기사 대신 격문을 쓰는 이념 과잉 기자들 탓에 국가는 두 쪽이 나고 결국 백성들이 피멍 들고 만다. 세월호 참사도 다른 게 아니다. 돈이건 비겁함이건 게으름 탓이건 자기 할 일 안 하고 자리만 지킨 사람들 탓에 꽃 같은 청춘들이 목숨을 잃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많은(어쩌면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많은 유일한) 곳은 뭐니뭐니해도 정치권일 터다. 반쯤 가라앉은 배 안에서도 계파 이익에 목을 매고 드잡이하는 야당은 물론, 그들 탓하며 불구경만 하는 여당 역시 자신을 위해 국민 대표로서의 일을 희생시키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자기 이익을 국민 이익으로 포장하는 데 이골이 나다 보니 나중엔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다.

 다른 직업도 그렇지만 정치인들은 특히 어떤 부류인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후자일 경우 국민의 희생이 가장 넓고 크고 깊기 때문이다. 영어가 정치가(statesman)와 정상배(politician)를 구분하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그 구분 기준을 다시 한 번 따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정치가는 양의 털을 깎고 정상배는 껍질을 벗긴다.” 미국 물리학자 오스틴 오말리의 말이다.

정상배에 가위를 맡기면 끝장이다. 더 이상 대표할 국민이 없게 될 테니 말이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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