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이익 위해 당 대표 흔들면 희망 없어…야당이 건강해야 사회적 갈등 해결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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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석의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재건이 시급하다.

 “야당이 건강해야 사회적 갈등이 관리되고, 야당이 존재감이 없거나 부실해지면 갈등이 제도권에서 해결되지 못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게 정치학계와 정치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7·30 재·보선 패배에 이어 세월호특별법 정국을 거쳐 ‘박영선 탈당 파문’에 이르기까지 새정치연합은 건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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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야당 재건의 기회가 없는지, 당내·외 인사들에게 질문한 결과 상당수가 가장 시급히 청산해야 할 과제로 ‘계파주의’를 꼽았다. 당 전체보다는 계파의 이익과 당권을 우선하는 문화가 오늘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17일 “지금 야당은 당이라기보다 국회의원 연합에 불과하다”며 “자기와 계파 이해로만 움직이다 보니 끊임없이 당 대표를 흔들어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인태 의원도 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는 질문에 “제일 중요한 건 정치적 욕심을 좀 버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당내 강경파들은 불과 한 달여 전에 자신들이 직접 추대한 ‘당 재건 사령탑’의 퇴진을 요구했다.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이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영입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과 소통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숨은 이유는 결국 차기 당권을 노리는 그룹과 박 원내대표 측의 계파 갈등이었다는 얘기가 많다. 외부 인사 영입을 막고 있는 폐쇄성도 결국 계파의 벽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중심 없는 리더십’ 못지않게 구성원들의 ‘팔로십(구성원으로서의 자세) 붕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강경파들이 박영선 위원장의 원내대표 자리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며 “투표해서 뽑은 이를 그만두라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부영 상임고문은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자기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는 극단적인 표현을 안 하는 말버릇이 필요하다”며 “당내에서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경칭을 쓰고 극단적인 표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 여당이나 대통령한테 쓰는 언어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근본적으로 이번 기회에 당풍(黨風)을 고쳐야 한다”며 “새 비대위에서 기본적인 정당인의 태도와 당 구조를 바꾸고, 다음 전당대회에서 지도력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인사들도 이 고문처럼 ▶새 비상대책위원회를 야당이 어떻게 운영하느냐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제1야당에 ‘마지막 기사회생의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고 봤다.

 윤여준 전 의원은 “새 비대위원장이 혁명적 발상을 갖고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로 일하면 야당에도 기회가 다시 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비대위원장이 ‘계파정치를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대위원장과 차기 당 대표에게 강력한 권한을 줘야 야당 재건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상준 교수는 “지금처럼 비대위원장을 하라고 해놓고 뭉개고 깔아내리면 희망이 없을 것”이라며 “비대위원장에게 아주 강력한 권한을 준 뒤 그 결정에 의원들이 따르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1년 12월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대위처럼 막강한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고 예시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는 “다음 전당대회에선 광범위한 시민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전당대회를 열고 여기서 선출되는 대표에겐 ‘차르’(군주)에 가까운 강력한 리더십을 보장해야 한다”며 “그 대표가 혁신위원회를 당내에 구성해 2년간 전혀 지금과는 다른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천정배 전 의원도 “당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직접투표로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뽑고, 대표 선출 뒤에는 정해진 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했다.

 ‘민주 대(對) 반민주’라는 2분법에 안주하지 말고 위기의식을 좀 느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지금 야당엔 위기감이 공유되고 있지 않다”며 “의원들이 그렇게 급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으면 저렇게 갈 수가 없다”며 “위기감이 공유되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를 변화시킬 혁신의 힘이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승욱·이지상·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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