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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보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영국 경관들은 뛰는 일이 없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한가해서도 아니다. 경관이 길거리에서 뛰면 흑 행인들이 놀랄까봐 그렇다.
『미스터 보비!』 소년이 경찰을 보고 이렇게 불러도 예외 없이 대답은 『예스 서』다. 부른 사람이 멋적을 정도로 깍듯한 존대다.
런던의 경찰을 「보비」라고 부르는 데는 까닭이 있다. 1829년 런던 경시청을 창설한 사람이 바로 그 무렵의 내무장관이었던 「로버트·필」경. 「보비」는 「로버트」의 애칭이다. 「봅」이라고도 한다.
제도적 명칭을 사람이름을 따서 부른 것만 봐도 훨씬 친근감을 준다. 더구나「보비」와 같은 흔한 이름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런던 보비」의 제복은 좀 색다르다. 우선 1m80m이상의 훤칠한 사나이들에 걸쳐진 여유 있는 제복은 흡사 쇼윈도의 멋진 마네킹이라도 보는 것 같다. 삐죽이 솟은 모자를 푹 눌러 쓴 품이 겸손하고 피스톨을 차지 않아 공연한 두려움이 없다.
어느 모로 보나 「런던 보비」의 인상에서 「삼엄」을 읽을 수 없다. 그저 위엄정도가 걸맞는 말일까.
바로 그 점잖은 아저씨들이 범인을 뒤쫓는데는 「셜록·홈즈」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경찰을 알아준다지만 「런던 보비」만은 못하다.
영국경찰의 운영방식은 특이하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문패와 함께 「PC」라는 묘지를 달아놓는다. 폴리스 컨스터블(Police Constable), 곧 「경관」의 약자. 자기 집이 곧 파출소이자 경찰서이다,
그는 주민이나 시민의 이웃에 함께 어울려 살며 그야말로 공복(공복)으로 봉사한다. 이런 제도는 범죄를 뒤쫓기 위해 있기보다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있다. 그는 우선 분쟁이나 사건의 조정자이고 조사자의 구실은 나중이다. 시민의 이웃이며 아저씨이기를 스스로 바라는 것이다. 시민들도 「우리의 경관」으로 그들을 위해준다.
이쯤 되면 「런던 보비」들은 저절로 기운이 생길 것이다.
시민들은 또 그들을 떠받들어 그렇게 만들어준다. 경관에게 봉급을 많이 주어도 시민들은 당연한 일로 안다. 이런 경찰이야말로 외유내강이다.
먼 나라 얘기만 할 이 아니라, 요즘 한 형사의 스캔들로 우리 경찰의 어깨가 처진 것은 모두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하지 않고, 국민이 자신의 안녕을 지켜주는 경찰을 믿지 않으면 그 사회는 무법천지나 같다.
이번 스캔들사건 속에서 수선스럽게 맞는 경찰의 날(21일)은 그런 뜻에서 국민과 경찰이 신뢰와 존중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경찰의 대우만이라도 개선해 주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바로 이웃 일본만 해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경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년들이다. 얼굴 표정에도 긴장이나 그림자가 없다. 편안하고, 느긋한 모습들이다. 일상적인 근심이 없어 보인다.
결국 그런 얼굴은 그 사회의 얼굴이기도 하다.
우리도 언필칭 소득이 1천5백 달러가 넘었으면 그런 얼굴의 경찰을 볼 수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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