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몇병까지 배달을 해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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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콜라 몇병을 사면서 배달해 달라고 한다. 배추 두포기만 사도 배달, 제일 가벼운 휴지와 라면 몇개면 이것도 짐이라고 슈퍼마키트용 장바구니에 담아서 동·호수를 적어 몇시쯤에 집에 사람이 있다고 시간까지 적어 저만큼 밀어 놓는다. 이렇게 아침나절을 돈지갑만 들고 슈퍼마키트로해서 미장원에서 머리손질하고 아파트 문앞에 와보면 시골서 올라오신 시어머님이 커다란 보따리를 서너개 놓고 아파트의 잠긴 문을 원망하고 있다.
보따리를 펴보면 감자랑 호박·깻잎에 하얗게 다듬어진 파등등이 담겨있는데 며느리 눈에는 시덥지 않게 보인다. 그래도 노인께서는 새벽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양손에 들고 머리에 이고 오셨는데 그 정성을 며느리가 알리 없다.
70년대 초반에 생긴 슈퍼마키트는 처음엔 꽤나 생소했다. 물건을 마음대로 골라서 계산대에 와서 계산을 하면 돈이 모자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또 견물생심이라고 진열대에 진열돼있는 각종물건들을 주머니사정은 아항곳없이 자꾸 사고싶은 마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게다. 이러한 심리작용때문인지 슈퍼마키트는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로 고객유치에 열을 올리고 배달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아예 배달원을 몇명 고용하고 있다.
웬만한 주택가 앞·뒤, 아파트입구에 제일 먼저 들어서는것이 슈퍼마키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이쪽이 생기면 한길건너 저쪽에 생기고 자기네끼리 경쟁이 붙어서 할인판매에 매장마다 선물증정까지 겹쳐 고객들을 유혹한다.
지나친 친절은 아첨에 가깝다는 말이 있듯이 슈퍼축에서 먼저 제의된 배달이 우리들을 게으르게 만든 것같다. 맥주 한박스면 무겁고 부피가 크다. 그런정도는 일반가게에서도 배달이 된다. 그런데 맥주 몇병 마실일이 있으면 전화로 주문을 하게되는데 그것이 미안하니깐 부엌을 뒤져본다. 설탕이 반이 남았는데도 주문한다.
식용유와 조미료, 아이들 아이스크림까지도. 그러면 단가가 몇만원이 넘어서고 슈퍼측에서는 매상이 올라서 휘파람을 날리면서 아파트계단을 밟는다.
이래서 주부들은 지폐가 두툼한 지갑과 입만가지고 다니면 손에 무거운 짐 안들고 다녀도 편하게 된것이다.
원래 외국에서는 슈퍼마키트하면 배달이 없다고 들었다.
비싼 인건비를 최소한도로 줄이고 그대신 물건값이 소비자에게 값싸게 돌아가게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뭔가 잘못된것 같다. 슈퍼마키트라고 하면 배달이 우선이니까 물건사고 빈손으로 가면서 같은돈 내면서 무거운 짐들고 다닐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거운 짐들고 가면 큰손해보는 것처럼 억울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상인들은 피곤하다. 어쨌든 강사가 괜찮다는말에 우후죽순격으로생기는 슈퍼마키트도 몇달이면 문닫는 가게가 많은가보다.
경쟁에서 밀려난 결과도 있지만 남이 잘된다니까 남의돈 빌어서 차려놓고 뒤처리를 감당못해서 그만둔 사람도 많다.
이제 우리도 웬만하면 손에 물건들을 들고 다녔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쁘지 않으면 말이다. 지금도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또 주택단지에서 배달주문이 빗발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생활필수조건으로 돼버렸으니…. <경기도수원시매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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