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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26) 비빔밥 - 전주비빔밥 vs 멍게비빔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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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나물과 고기를 고추장이나 간장양념에 비벼 먹는 비빔밥은 외국인도 좋아하는 한국음식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두 집은 추구하는 바가 뚜렷이 다릅니다. 한 곳은 비빔밥의 대명사인 전주식 전통비빔밥을 만들고, 다른 한 곳은 멍게와 골뱅이 등 해산물을 이용해 주인장이 개발한 비빔밥을 내놓습니다.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롯데호텔 무궁화 천덕상 셰프,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맛집 파워블로거(비밀이야) 배동렬씨, 『주식9단 서울맛집 유랑』 저자 이영승씨의 추천을 받아 6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6곳을 8월 27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고궁과 들름집이 각각 1,2위로 뽑혔습니다. (27) 라이벌 ‘청국장’ 결과는 9월 24일 발표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샤브샤브’ 투표 방법은 15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정보부와의 첫 인연, 그렇게 40년 역사가 시작되다

“비빔밥이라고 하면 대충 나물 넣고 비벼 먹는 간단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전주 전통비빔밥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에요. 참 까다로운 음식이죠. ”

 전주의 유명 비빔밥 전문점인 고궁의 박병남(60) 대표는 비빔밥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말부터 했다. 밥 하는 순간부터 그릇에 담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일이 사람의 세심한 손길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밥부터가 평범하지 않아요. 추구하는 맛에 따라 어떤 집은 소뼈 우려낸 물로, 어떤 집은 명태국물로 밥을 짓죠. 저같이 깔끔한 맛을 원하는 사람은 콩나물밥을 하기도 하고요. 함께 섞는 재료도 종류에 따라 각각 볶고, 삶고, 데치고, 무치고, 모두 다르게 조리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오실과라고 하는 밤·대추·은행·호두·잣을 올리는데, 기계로 할 수 있나요. 일일이 손으로 놓죠.”

전주비빔밤엔 전통적으로 육회·황포묵 등 8가지 필수재료가 들어간다. 여기에 호두·잣 등의 오실과로 멋을 낸다. 고궁은 이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정통 전주비빔밥 집이다.

 박 대표는 일찌감치 비빔밥에 인생을 걸었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1973년 그는 누나 부부가 운영하던 전주의 한국관이라는 비빔밥 전문점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잡화점을 운영했는데 ‘조그만 담배가게를 하더라도 직장생활보다는 내 장사가 낫다’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한국관은 손님이 참 많았어요. 70년대는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으로 관광을 많이 왔던 시기라 많을 땐 관광버스가 하루에 20대도 넘게 왔어요. 전통음식이라는 자부심도 있고 사람들도 좋아하니 여기에 내 인생을 걸어도 되겠다 싶었죠. 식당에 출근한 첫날, 더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가게에 식탁이랑 의자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알고 보니 출장을 갔더군요. 당시 서울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는데 전통 비빔밥을 맛보고 싶다고 해서 가게가 통째로 출장을 간 거죠. 이 정도라면 되겠다, 싶었어요.”

20살에 식당에 들어간 그는 청소와 배달, 서빙 등 잡일을 도맡아 하며 가게 운영을 바닥부터 배웠다. 8년 뒤 다른 사업을 시작한 매형으로부터 한국관을 인수받았다. 28살 나이에 661㎡(200여 평) 규모 식당의 사장이 된 거다. 8년 경력 정도론 만만치 않았다. 아직까지 그와 함께 하고 있는 11살 위 박병학(71) 조리장과는 운영 초반에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대부분 사소한 의견차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죠. 그런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슬프면서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어린 아이였던 조리장 아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높은 데서 떨어져서 죽었어요. 갑자기 자식이 죽으니 일이고 뭐고 술만 끼고 살더라고요. 굉장히 슬프고 안타깝지만 사업하는 입장에서 난 손님이 밀려오니 장사는 해야겠고.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다른 사람을 쓰기도 하고 내가 주방에 뛰어들어가기도 하면서 몇 년을 보냈죠. 난 당시 결혼도 안 했던 때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안정이 되더군요. 원래 성실하고 일 잘하던 사람이라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게다가 저랑 돌림자도 같으니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고비를 넘긴 그는 96년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궁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비빔밥집을 냈다. 한국관·성미당·한국집 등 전주에서 역사가 깊고 유명한 비빔밥전문점 못지않게 키우리라 결심하고 상표등록을 했다. 때마침 매형 사업이 어려워지자 한국관을 매형에게 돌려줬다.

1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고궁면기 2 재료는 모두 각각 따로 조리한다. 3 한옥식인 식당 내부. 4 입구엔 영어·중국어·일본어 메뉴가 함께 쓰여있다.

 “한 15년 잘 운영했지만 매형이 어려워지니 마음의 짐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돌려주고 새로 만든 고궁에 집중했어요. 한국관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이었지만 고궁은 인지도가 없잖아요. 그래서 서울, 그 중에서도 관광 중심지인 명동에 99년 진출한 거예요.”

 비빔밥 하나 먹으러 전국에서 찾아오는 식당을 해왔던 그인지라 서울에 가게를 내면 곧바로 ‘대박’이 날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반응은 시큰둥했다.

 “처음엔 예상외로 힘들었어요. 서울이라 가게세랑 인건비가 엄청난데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일본사람이 한 90% 돼요. 그래서 아예 타깃을 일본인으로 바꿨어요.”

 그는 메뉴판에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외국어를 써넣고 호텔과 택시 스탠드, 관광안내소 등 외국인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전단지와 할인쿠폰을 나눠주는 식으로 홍보를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신문과 잡지, 방송 등에 소개가 돼 손님이 많아졌다.

 손님뿐 아니라 명예도 얻었다. 자신이 만든 놋그릇이 비빔밥 그릇의 대명사가 된 거다.

 “비빔밥 그릇도 세월에 따라 변했어요. 처음 식당에 들어갔을 땐 스테인레스를 썼죠. 옛날에는 놋그릇을 썼겠지만 다들 그랬듯 가볍고 관리도 편한 스테인레스를 썼던 거죠. 그러다 75년 정도부턴 돌솥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뜨거워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게다가 뜨거운 솥 안에서 재료들이 2차로 조리가 되서 원래 내려던 맛이 변형이 되기도 하고요. 원래 전주비빔밥은 60~65℃ 온도에서 먹어야 해요. 재료의 살아있는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거든요. 놋그릇은 그 온도로 유지가 돼요. 그래서 제가 명동에 진출한 99년부터 놋그릇으로 바꿨어요. 그런데 이왕 바꿀 거 디자인을 좀 예쁘고 먹기도 편하게 하고 싶단 생각에 중앙시장에 주문을 해서 모양을 만들어 봤죠. 그릇 아랫부분이 넓고 위가 좁은 그릇으로요. 지금은 ‘고궁면기’라고 불려요.”

 이 그릇은 위가 좁은 모양 때문에 밥을 비빌 때 내용물이 그릇 밖으로 튀지 않고 잘 비벼진다.

 비빔밥에 한평생을 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전주비빔밥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기본 재료가 있어요. 밥·고추장·육회·고사리·달걀·콩나물·황포묵·도라지 8가지죠.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콩나물이에요. 싸고 흔해서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해요. 우린 딱 길이가 7cm되는 어린 콩나물만 써요. 연하고 통통해서 식감 좋고 맛있거든요. 이렇게 흔해서 하찮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중요한 걸 끝까지 잘 지켜나가는 것, 그렇게 끝까지 할 생각입니다.”

가격 올렸는데도 대박났어요, 카피 한 줄의 마법

들름집의 문성도 사장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의 딸이 손으로 쓴 들름집 메뉴판. 보는 순간 온 몸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문구가 묘미다.

각종 먹거리가 몰려 있는 강남역. 익숙한 프렌차이즈 음식점과 최신 트렌드의 디저트가게, 유명 술집 등 다양한 식당이 공존한다. 이 중 가게 문 연 지 6년 만에 비빔밥 하나로 ‘강남역 맛집’ 대열에 이름을 올린 집이 있다. 삼성화재 서초사옥 뒤쪽 골목에 있는 이름도 낯선 들름집이다.

 “맞아요. 지나는 길에 들르다, 할 때 바로 그 들름이요. 직접 지었는데, 재밌잖아요.”

 가게 이름뿐 아니라 이 집엔 문성도(62) 사장 아이디어가 곳곳에 꽉 차있다. 우선 주 메뉴인 멍게비빔밥이 그렇다. 비빔밥에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초장 대신 간장에 비빈다.

 “원래 목동에서 한 3년간 나물 넣는 산채비빔밥집을 했어요. 그러다 2008년 지금 자리로 옮기면서 뭔가 색다른 음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이 근처에서 잠깐 직장생활을 해서 이 주변사정을 잘 아는데, 웬만한 걸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가게 문 열기 전 1년 동안 메뉴 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사실 그는 인천에서 제법 규모가 큰 김치공장, 그리고 전국 20여 개 매장을 둔 아동복 브랜드를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사업차 전국을 다니며 맛 좋은 음식을 두루 먹어본지라 그 스스로가 평범한 메뉴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다 거제도에서 파는 멍게비빔밥을 떠올렸다.

2 문 사장은 손님이 오면 무조건 삶은 달걀 하나를 무료로 준다. 영양 챙기라는 의미란다. 3 통영산 싱싱한 생 멍게만 쓴다. 4 식당 곳곳엔 재치있는 문구가 많이 보인다. 5 식당 외관.

 “멍게 본산지인 거제 쪽에서는 멍게를 젓갈로 담아 초장에 비벼 먹어요. 그걸 보고 초장은 맛이 너무 강해서 멍게 본연의 맛을 뺏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 멍게를 간장에 한번 비벼본 거죠. 맛있더라고요. 물론 한가지 조건이 있어요. 멍게가 신선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비린 맛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통영에 있는 곳과 직거래를 해서 되도록 매일 아침 신선한 물건을 받아요. 골뱅이도 신선도를 위해 변산반도에서 직접 받고 있어요.”

대부분의 음식점이 그렇듯 이곳 역시 처음부터 장사가 잘되진 않았다. 문 연 뒤 2년간은 현상유지만 겨우 할 정도였다. 그 힘든 시절 귀한 인연을 만났다.

 “비빔밥 말고 장국국수랑 비빔국수도 주 메뉴에요. 초창기엔 사실 비빔밥보다 국수에 더 기대를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팔면서도 뭔가 부족한 거예요. 2%가 아니라 한 10% 정도. 그러던 어느날 한 70대 손님이 장국국수를 맛보곤 ‘이걸로는 안돼’ 딱 한마디 하더라고요.”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던지라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는지,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손님은 국수를 좋아해서 대구 단골집을 한 달에 한 번은 꼭 갈 정도였다. 그는 일단 즉답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

 “며칠 뒤 다시 와서는 ‘답을 찾았다’며 조선간장을 써보라는 거예요. 원래 소금으로 간을 했거든요. 조선간장을 넣어봤더니 정말 깊은 맛이 나면서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노인은 단골이 되서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찾았다고 한다.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으면 문 사장이 직접 “국수 드시러 오시라”고 전화를 건단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맛집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멍게비빔밥이 ‘대박’이 난 건 불과 한두 달 전이다.

 “한 달 전쯤 가격을 500원씩 올렸어요. 원래 싼 가격이었던지라 인상한 게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가격을 올리고는 문 앞에 ‘멍게비빔밥을 드시면 하루 종일 통영앞바다가 넘실거립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놨어요. 어차피 우리집은 매장이 작아서 늘 밖에 줄을 길게 서거든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마법이 일어난 거예요. 이걸 써붙인 날부터 가격 올랐다는 타박은커녕 멍게 비빔밥 주문이 막 들어왔어요. 재밌다고, 정감있다고 좋아들 하더라고요.”

늘 있던 메뉴, 오히려 가격이 올랐는데 안내문구 하나로 음식 팔자가 달라진 거다.

 가게 안에도 그의 재치가 곳곳에 묻어난다. 들름집 메뉴판은 문 사장 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들었다. 여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느낌이 싫어서 고민하다 딸한테 부탁해 만들었다. 음식 이름뿐 아니라 간단한 설명도 함께 적혀 있다.

 “손님들이 음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잖아요. 이 메뉴 컨셉은 ‘오글거림’이에요. 문에 붙여놓은 글도 그렇지만요. 예를 들어 멍게비빔밥은 ‘통영에서 공수해온 싱싱한 멍게를 간장소스와 채소를 넣고 비비는 순간 아!! 이 멍게향(香)’, 뭐 이런 거죠. 어때요. 오글거리죠?”

 가끔 들름집을 저녁에 찾으면 어리둥절해하는 손님도 있다. 인터넷에서 본 집이 아니라는 거다. 이유가 있다. 저녁에는 막걸리 등을 파는 주점으로 바뀌는데, 메뉴판도 달라진다.

 “식당이 좁은데 메뉴판을 여럿 붙일 수가 없어서 점심메뉴 뒤에 안주메뉴를 적었어요. 저녁 땐 메뉴판을 돌려 달거든요. 가끔 그걸 보고 ‘이 집이 아닌가’라며 갸우뚱하는 손님이 있어요. 그걸 보고는 문에다가 ‘이 집이 그 집’이라는 글을 또 썼죠.”

 손님을 끄는 이런 아이디어가 넘치는 걸 보면 음식장사가 딱 체질일 것 같지만 문 사장은 정반대로 그 어떤 사업보다 어렵다고 혀를 내두른다. 여러 사업 하며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음식장사만큼 힘든 게 없다는 거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쉽게 ‘식당이나 하지 뭐’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다 바보예요. 짧은 시간 안에 망하고 싶으면 음식장사 하면 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죠.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음식맛은 기본으로 완벽하게 해야하고 집 밖에 나서는 순간 모든 게 ‘전쟁’이에요. 재료값 흥정부터, 가게세, 직원관리, 음식값, 손님응대까지 모든 게 어렵죠. 며칠 전 5만원 내고 거스름돈 못 받았다며 막무가내로 돈 달라는 사람에, 또 어떨 땐 밥 먹고 돈 없다고 배 째라는 사람도 있고. 별일이 다 있어요.”

 그는 인근에서 33㎡(10평)짜리 이 작은 비빔밥집을 지켜낸 유일한 생존자다. 문 사장은 “6년 전 처음 들름집을 열 당시 주변에 있던 돈까스집, 김밥집 등은 이미 다 없어졌다”며 “손님이 계속 찾을 수 있게 같은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그의 희망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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