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발언-질문 스타일 싸고 여야 논쟁|여의 요점주의 「주문」에 야의 인기발언 「당연론」맞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직도 인기발언을 탈피못했다』는 『할 얘기는 다 짚고 넘어가겠다-.
대정부질문, 국회본회의 발언의 스타일.내용을 둘러싼 여야의 「관」에는 깊은 도랑이 있는 것 같다. 민정당은 인기발언을 하지말고 서론은 짧게 요점주의로 해야하다는 주장이다. 민한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면 인기발언도 하겠다고 맞선다.
과연 대정부질문은 어떻게해야 옳은가. 여야의 상반된 견해의 배경에는 피차 양보하기 어려운 정치적선-이른바 「개혁입법」의 타당성을 질문.답변을 통해 입증하려는 민정당측 속셈과 개폐논리를 수긍받으려는 민한당의 속셈이 엇갈리고 있다.
○…『흔히, 존경하는 의장.선배.동료의원 여러분…하고 시작해 세계를 한바퀴 빙돌아 국제정세를 논하고는 그제서야 본론에 들어가는데 그거 좀 짧게 못하는가』『발언을 하면서 기자석을 힐끗 쳐다보는건 무슨 까닭인가.』
의원발언이 서론과 의례적인 상투어가 길고 인가발언에 치우친다는 권정달 민정당사무총장의 비판이다.
요컨대 요점주의로 또박또박 묻고 싶은걸 묻고 자기견해를 밝히는 스타일 이어야 한다는 것. 그런식으로 한다면 발언시간 30분이 왜 모자라며 이를 연장하자는 민한당측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는 얘기다.
지난 5일 민한.국민당의 대표연설이 있은 후에도 권총장은 인기발언을 탈피하지 못했다는등 비슷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에대해 민한당측은 『무슨소리냐』고 펄쩍 뛴다. 고재청총무는 『그런게 인기발언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인기발언을 하겠다』고 맞섰다.
민정당 간부들은 곧잘 『존경한다면 「의장」할게 아니라 「의장님」이라고 해야되지 않겠느냐』고도 하지만 민정당 의원중에도 『존경하는 의장.선배.동료의원 여러분…』이라고 서두를 떼는게 보통이다.
과거 간단한 메모 한 장이나 아예 맨손으로 등단해 열변을 토하던 방식은 이제 여야를 막론하고 사라지고 거의 대부분이 발언원고를 준비해 읽어내려가는 「낭독형」이 됐기 때문에 스타일면에서 여야간 차이를 구별하기는 어려운편.
○…스타일보다는 역시 발언내용이 문제다. 이번 정기국회 최대쟁점이 「개혁입법」공방이란 점에서 대정부 질문을 통해 민정당은 개혁입법정당성을, 야당은 개발논리를 각각 내세우자는 작전이 숨어있다.
예컨대 유민한총재는 대표연설에서 「유신잔재의 청산」과 국회법.언론기본법의 개정을 중점거론했다. 말하자면 개혁입법중 유신잔재적 요소가 있다면 간접 화법으로 자기당의 개발논리를 세우려한 것.
민정당 일각에선 유총재연설이 예상선을 넘은 것으로 판단, 정치도전의 시발로 간주하는 의견도 나왔다. 과거를 빗대어 현실을 비판한게 아니냐는 얘기.
다음날인 6일 민정당의 박윤종의원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긴급수정, 발언의 초점을 유총재에 대한 반론에 맞추었다.
야당이 개정을 주장한 국회법과 언론기본법의 타당성을 역설한 뒤 박의원은 『개혁입법에 대해 문제점이었다고 보는가. 분명한 소신을 밝혀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말하자면 행정부측에 답변을 요구하는 스타일.
외교문제를 질문한 김진재의원도 『재시대외교의 청사진을 밝혀달라』고 주문해 행정부측에 홍보(?)기회를 제공.
이처럼 발언내용에서 본다면 민정당엔 특정답변 유도형 질문이 많았고 야당측은 정치공세와 야당성 부각을 목표로 설정.
민정당은 문.답을 통한 논리제시를 위해 행정부와 손발을 맞추는 당정협의를 했고 발언 의원들의 원고를 당에서 사전통제했다. 이 작업을 위에 당내 명문가(?)들을 동원, 발언원고를 손질했는가하면 조간에 터진 「사다트」대통령사망소식을 그날 질문에 활용하는 기동성도 보여줬다. 이런 작업 때문에 발언자는 자기질문과 당 징문을 섞어 발언한 결과도 생기고 원고수정작업이 늦어져 제대로 소화도 못하며 발언대에 선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다.
민한당의 경우 야당성 부각.정치공세라는 작전을 세웠다.
당초의 작전은 유총재의 총론을 각 제의별 질문자가 명론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분야를 발언한 김판술의원이나 김노식의원 역시 유총재 연설을 제대로 뒷받침 하지 못했다는 후평. 이런 현상에 대해 고재청총무는 『정치분위기에서 오는 위축도 있겠으나 경험없는 초선의원들 중에는 야당에대한 자의식이 철저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풀이.
○…과거 대정부 질문에선 야당발언의 「수위」문제 때문에 본회의장이 곧잘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이번 경우 그런일 까지는 없으리란 전망.
정치문제에 대한 첫질문자였던 김판술의원(민한)의 질문내용이 사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아 민정당측이 약간 긴장했었으나 발언내용이나 톤에 있어 신경 쓸 만한 대목이 없어 안도했다는 얘기다.
다만 임덕규의원(국민)이 대통령 임기후의 일을 거론한 사실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순서가 빠졌다고 한 발언이 가볍게 문제돼 민정당의 모 당직자로부터 핀잔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당직자는 『왜 엉뚱하게 임기후 문제를 끌어내느냐. 4년후 의원을 그만두면 뭘 하겠느냐고 물으면 당신이라도 기분이 좋겠느냐』고 했다는 것. 도 임의원의 국기에 대한 경례생략 운운은 의전을 모르고 한 말이었는데 행정부 측에서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이규정의원 (의정)이 돗자리사건을 거론한다는 것을 미리 들은 민정당의 한 간부가 『의원체면을 생각해 거론말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이의원이 표현한 좀 완곡하게 바꿔 거론해 버리자 『의원배지 달고 다니기가 창피하다』고 나중에 이의원에게 화를 낸 일도 있었다.
○…행정부의 답변자세가 눈에 띄게 단호해진 것도 이번 대정부 질문의 한 특색.
정부는 우선 미리 제출되는 질문 요지서에 없는 질문이나 의제 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할수 있는 성질의 내용도 회피한다는 방침.
농어촌 의료확대책을 물은 8일의 노태극의원 질문에 남총리가 사회문제때 답변하겠다고 미룬 것이라든가 7일의 정치.외교.안보문제에 대한 답변에서도 질문요지서에 없던 내용이라며 답변을 안한 것은 이같은 방침에 따른 것.
장관들의 답변에서도 『연구검토하겠다』『신중히 고려하겠다』는 식의 많이 사라지고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중평이다.
이같은 정부측 답변태도의 변화는 지난9월 국무회의석상에서 정송택정무제1장관이 성실하고 내용 있는 답변을 국회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특별요청을 한데다가 차관회의에서도 이뜻이 그대로 전해져 장관들의 답변자료를 적어주는 국장급들의 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데 원인이 있다는 것.
그러나 여당쪽에서는 장관들의 답변태도가 과거에 비해 간결하고 단호하며 개혁의지가 충만한(?)점은 인정하나 아직도 국회답변을 즐기는(?)기분으로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있고 야당쪽에서는 여당과 너무 손발을 맞추는 인상이라고 비판. <전육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