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 밤잠 앗아간 ″무급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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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탄제조업자들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정부의 석탄정책에서 용케도 허점을 발견해 소비자들의 쌈지돈을 긁어모았다. 국내석탄을 최대한 개발하고 탄질도 기준열량만큼 지져나가자는 정책명제가 동력자원부가 잡으려는 두마리의 토끼였다. 토끼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석탄생산업자와 연탄체조업자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속고 속이면서 부당이득을 취해왔다. 이러한 「열량사기극」은 때로 석탄업계의 적자경영이나 국민 주종 에너지의 공급부족우려라는 말로 덮여져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연탄이 열량단위로 볼 때 석유값의 3분의1밖에 안된 탓으로 작년에는 가정부문의 수요가 한해전보다 6·5%나 증가했다. 78년의 3%, 79년의 2·5%에 비해 2배이상이나 높은 증가율이었다. 연탄소비 급증은 79년과 80년에 각각 3차례씩 석유값을 인상한데 따른 급격한 연료전환 현상이었다. 한겨울뿐만 아니라 복중에도 연탄파동 조짐이 여러 차례 나타나자 정부는 「석탄증산」 정책을 몰고가지 않을 수 없었다.

<못따라가는 석탄생산>
작년의 석탄 생산량은 1천8백62만t으로 한해 전보다 2·3%가 늘어났고 올해는 2%늘어난 1천9백만t으로 책정했다. 2%증가가 숫자만으로는 지극히 적은 것 같지만 부존량이 적고 채탄조건이 가장 어려운 우리 나라 형편으로서는 대단한 것이다.
9월말 현재 전국 1백97개 석탄광에서 생산된 민수용 석탄은 1천4백70만t으로 작년동기에 비해 무려 8%나 증가, 연증가율 2%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생산박차가 가져온 결과였다. 이대로 간다면 연말에는 목표치보다 1백만t이나 많은 2천만t이 생산될지도 모른다.

<낮아지는 연탄질>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정부는 석탄 증산을 장려하기 위해 생산업자가 1t을 캘때마다 열량의 높고 낮음에 따라 7천∼l천원의 장려금을 지급했다. 올해 증산장려금은 약50억원. 여기에다 탐사와 갱도굴진·수송비·하역비 등 보조금까지 합치면 석탄업계에 대한 정부의 올해 총지원자금은 1천67억원이나 된다.
석탄은 특3급에서부터 9급1, 2호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급 24호로 나누어져 등급에 따라 정부 최고 판매가격이 지정 고시되고 있다.
가정용 연탄의 원료가 되는 석탄은 6급 1호탄으로 t당 가격은 2만9전8백80원. 열량은 ㎏당 평균 4천6백킬로칼로리다.
쓰임새는 늘어나고 가채연수는 35년이라고 번번이 판정을 받아온 우리 나라 석탄은 열량이 해마다 50킬로칼로리씩 줄어들고 있다. 지난 상반기의 평균 석탄열량은 4천3백44킬로칼로리였다.
원탄의 열량이 떨어짐에 따라 연탄의 품질도 낮아져 주부들이 하루에 서너차례씩, 심할경우 대여섯차례씩 연탄갈이에 몸을 매야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동력자원부는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지난 79년2월 연탄의 ㎏당 기준열량을 4천6백킬로칼로리에서 5%의 오차를 인정, 4천3백70킬로칼로리까지 단속기준을 낮추어 설정했다.
일부 연탄제조업자들은 『원탄의 품질이 나쁘다』 『단속기준이 낮아졌다』는 두가지 명목을 내세워 기준열량보다 2백30이 낮은 4천3백70킬로칼로리의 연탄을 찍어냈다.
현재 석탄가격 체계상 2백30킬로칼로리의 열량차이는 판매가격에서 7월(현 연탄가격기준)의 추가이익을 의미한다.
일부 연탄업자들은 7원의 이득을 보면서도 열량을 4천3백70킬로칼로리는커녕 오히려 이보다 1백∼2백70이나 더 낮은 4천1백킬로칼로리 또는 4천킬로칼로리 이하까지 만들어 2중 부당이익을 창출해냈다.
이들은 석탄생산업자들로부터 계약열량보다 낮은 원탄을 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석탄업자들은 그들이 일부러 열량이 낮은 3천킬로칼로리짜리 저질탄을 구입, 폭리를 취하고 석탄업자들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운다고 맞서고 있다.

<하루 2천만개 생산>
일부 석탄생산업자들은 원탄을 급수대로 판매할 경우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팔 때는 실제 급수보다, 1등급 더 높여 연탄공장에 판다. 6급1호탄을 1등급 올려 5급2호탄으로 속여 팔 경우 1t에 1천4백30원의 부당이득을 본다.
급수가 1등급 낮은 것을 높은 것으로 속아 산 연탄업자는 연탄 1개에 3원50전∼6원30전씩 손해를 본다고 그러나 연탄업자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때로는 석탄업자와 적당한 협상에 의해 거래를 튼다. 실거래가격과 장부상의 거래가격의 차액을 나누어 갖는다.
어떤 연탄업자의 저질연탄생산과정을 보자. 3천킬로칼로리이하의 무급석탄을 사들이고 열량이 약간 높은 국내 석탄과 수입석탄을 12%정도 석는다.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 주부들을 올리는 저질품이다. 이것만으로도 1개에 적어도 3원이상의 부당이득을 본다고 시커먼 덩어리가 열량이 어느 점도인지 소비자는 알길이 없기 때문에 눈뜬 채 조악품을 사들인다고 동력자원부는 지난 8월14일 석탄가격을 조정하기 위해 연탄업계현황을 둘러보면서 이러한 불공정거래의 소지를 눈치챘으며 나중에 이 사실을 발표까지 했다.
15·8%인상을 발표하면서 탄질유지가 안될 경우 고발 또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각시·도지사에게 지시했다.
전국 연탄공장은 2백55개. 월동기에는 하루에 2천77만개의 연탄을 만들어내고 이중의 40%가 서울에서 소비된다. 22공탄 1개의 공정이윤은 1원47전이다. 일부 연탄공장이 정부가 인정한 이윤외에 소비자들에게 열량을 속여 번 돈은 굉장한 액수에 이를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하다.
더욱이 내로라하는 석탄광산까지 가진 연탄업자가 열량 사기극을 벌인 것은 언어도단이다.
전국 7백53만가구 가운데 71%인 5백35만가구가 연탄을 쓴다면 그것은 단순한 서민연료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의 연료인 것이다.
정부는 해마다 석탄을 캐내는 갱의 깊이가 25m씩 내려가고 작업조건이 악화된 상태에서만 검은 덩어리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석탄의 절대부족을 막기 위해서는 저질탄의 생산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시급한 기술개발>
채탄과정에서는 저질탄층을 뚫고 나가야 고질탄을 캐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원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3천∼4천킬로칼로리의 저질탄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연탄파동을 막기 위해 석탄생산을 독려해온 마당에 다시 저질탄생산을 억제한다면 이는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동력자원부는 저질연탄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지난 9월 3천킬로칼로리 이하만 생산과 판매를 금지시켰다. 만약 그러한 행위가 발견될 때에는 각종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석탄업자들은 중산에 따른 장려금을 타내기 위해, 연탄업자는 판매에서 생기는 부당 이익을 보기 위해 무급탄을 생산하거나 이를 사들였다. 연탄은 만드는대로 팔리기 때문에 불공정거래는 끊이지 않는다.
석탄을 증산하면서 탄질을 일정 수준에 맞출 수는 없을까. 정부는 수급에 무리가 없도록 하면서 이 두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추구하려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에 업자들의 6천킬로칼로리 이상 고질탄 생산 기피를 막기 위해 상위등급에 대한 가격우대제를 실시했고 최신 선탄시설을 실치하도록 의무화 앴다.
전국 탄광에 설치된 선탄시설은 모두 석탄의 크기대로 체로 걸러내는 건식방법이며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고가의 습식선탄시설이 하나도 없다.
또 하나의 숙제는 수입무연탄을 혼합비율을 높여 열량도 올리는 기술개발이다. 현재는 국산석탄 85%에 수입석탄 15%이하로 섞어야 연탄이 성형 가공된다. 국산보다 2배이상 비싼 수입석탄의 혼합비율을 높이면 가격은 비싸진다. 석공기술진들이 열량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있지만 KAIST 등 다른 정부기구의 이용도 강구돼야한다.
저탄가정책의 지속으로 석탄·연탄의 불공정거래가 유발되었다고 해서 이것이 묵인될 수는 없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가격현실화를 통해 탄가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를 호소하고 있지만 국민의 세금에서 지출되는 30여가지 이상의 각종석탄보조금이 제대로 석탄증산에 쓰이는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품질이 좋은 연탄을 만들어 달라고 업자들의 도덕심에 또 하소연한다면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대중연료가 공정거래 바탕위에서 생산 유통이 되도록 정부와 각시·도지사가 감독의 손을 계속 뻗쳐야한다.

<최철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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