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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파동|"빵보다 대포"…멍드는 소련경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모스크바의 신문들은 20년동안 생필품값이 오르지 않았음을 일제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눈치빠른 소련국민들은 재빨리 상점들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안올랐다라는 선전은 곧 올리겠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같은 예상은 적중해서 소련정부는 지난주 휘발유값을 갑절로 올리는 것을 비롯해 국민주인 보트카와 담뱃값등을 17∼27%씩 대폭 올려버렸다.
당국의 발표인즉 이번에 손댄 것은 지나친 소비억제를 위해 사치품목에 한정했으며 가격인상이 아니라 조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린 것이 정말 사치품이라면 모를까 바나나를 비롯해 가구들까지 사치품으로 분류해놓고 있는 판이니 결국은 생필품값이 그만큼 오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들은 인플레를 모르는 나라임을 주장해왔다. 1962년이후 실제로 우유나 달걀·고기값등은 계속 그전수준을 유지해왔다.
물론 그동안 인상요인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손해보는 장사에 대해서는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으로 메워왔다. 식료품값 안정을 위한 정부보조금만 해도 3백40억달러를 넘고 있다.
이러다보니 상품의 가격이 원가가 얼마 들었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만드는데 얼마가 들었으니 얼마에 판다는 식이 아니라 무조건 정부가 매겨놓은 가격에 팔아야했다. 따라서 살물건이 없으면 없는대로 견뎌내는 것이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고 해서 가격이 오르는 이른바 시장경제의 원리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물량부족에 따라 소비생활은 극력 억제되어왔고 쓸데가 없다보니 최근 15년동안에 국민들의 저축은 8배나 늘어나는 아이러니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소련당국이 주장하는 물가안정도 따지고 보면 힘으로 눌러놓은 극히 몇가지 상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다.
바나나와 레몬을 사기위해서 상점앞에 2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던 한 주부는 이들 과일의 값이 40∼80%나 올랐다고 투덜거렸다.
또 소비를 줄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보트카값을 대폭 올렸지만 보트카를 사려고 늘어선 줄은 종전에 비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소련국민들은 왜 물가가 비싼지 잘 알고 있다.
빵 대신 대포를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소련의 한 젊은여성은『전쟁을 치르면 결국 그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폴란드의 사태도, 아프가니스탄의 침공도 결국 그 비용을 대야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폭적인 가격인상을 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소련경제는 어려운 형편인 것이다.
지극히 비능률적인 경제운용을 바탕으로 막대한 군비부담, 고질적인 저생산성을 비롯해 금년에는 지난해보다 1천만t가량의 감산이 예상되는 밀의 흉작까지 겹쳐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뉴스위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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