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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울음서 기도소리를 듣는 「시의귀」를|소재를 좁게 잡고 관념의 그늘은 떨쳐 버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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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번 회에는 가을 감각에 바탕을 두고 노래한 작품 다섯 편을 내보낸다.
『귀뚜리』(김남옹) 는 그 표현이 좀 낡은 채로 생활 체험과 계절 감각을 찰 조화시켰다.

<기도실 그늘진 구석 저 귀뚜리 기도 소리>-귀뚜리 울음에서 기도소리를 새겨 듣는 그 귀야말로「시의 귀」가 아닐 것인가.
『벌레 소리』(김숙자) 도 퍽 잘 깨어 있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한밤엔 달이며 있어 더더옥 서러운가>I그럴 리가 없지만, 그렇게 느낀 것이 바로 「시의 마음」 인 것이다.
불만이라면 그 가락에 있다. 첫째 수 중부의<울어 쌓는다>에서의 「쌓는다」는 별 의미가 없는 사투리인데, 그것으로 구차스럽게 가락을 짓다니….둘째수 초장과 더불어 불격으로 떨어진 가락은 바로 잡아 보시기 바란다.『가을삼제』(권경애) 는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다. 소재를 너무 넓게 잡았을 뿐 아니라. 중추도 되기 전에 만추까지 노래하다니. 관념의 그늘을 떨어버리지 못한 채로 묵은 체험을 일깨워 정성스럽게 노래한 점만은 높이 사줄만하다.
이 작품의 불만도 가락에 있다. 종장의 가락 변화에 둔감한 상태에서 손을 보아 내놓는다. 초고와 비교, 어설펐던 점을 깨달아 다시는 실수가 없어야겠다.
『밤』(이대영)은 단수에다 가을의 맛은 꽤 짭짤하게 살려놓고 있다.
그런데 한 작품에「맛」이란 말이 몇 번을 겹쳐 씌어져 있는가. 자그마치 세번이다. 「사십」이란 나이 개염도 꼭 그런 식으로 나타내야 하는지, 여러모로 생각을 거듭해 볼일이다.
『추석달』(전용순) 도 단수로서의 특성을 잘 살리고있다.
그러나 소박하다고 좋게만 치부할 수 없는 흠이 잡힌다.

<저 구름 잠시 빌어서 검게 보게 하소서>-워낙 종장이 이렇게 되어있는 것을 고쳐 놓았다. 그래도 낡아 있음을 면치 못하는 것은, 그 발상이 옛 시조의 그것 (「봄바람을 빌어다가 귀밑 서리를 녹여 볼까」라고 한 우탁의 작품)을 너무 닯아 있기 때문일까.
철이 철인만큼, 넘쳐나는 가을의 시편들을 감당할 길이 없다. 이번 회에도 아깝게 밀려 난 것들이 숱하다.
『가을밤』(가순찬), 『김장솎음』(박미자), 『국화 이야기』(이상섭),『들국화』(채수길), 『가을 추상』 (이택제)등은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식망말고 다들 정진하시기 바란다.

<박경용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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