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무죄, 사심 판결" … 현직 판사가 공개 비판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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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左), 이범균(右)

현직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담당 재판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현직 판사가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12일 오전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하루 전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 유죄, 선거법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이범균)의 판결을 ‘지록위마(指鹿爲馬·중국 진시황의 아들 호해에게 환관 조고가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주장한 일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에 원 전 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 공작을 했다면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어 “정치개입이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다는 법원의 논리는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이고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해당 재판부를 향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이 가득한 판결”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정치적인 견해도 가감 없이 밝혔다. 그는 “현 정권은 법치정치가 아닌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혼외자 문제로 물러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해선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의연하게 꿋꿋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사생활의 스캔들이 꼬투리가 되어 정권에 의해 축출됐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이날 오전 게시판에서 해당 글을 삭제했다. 김선일 대법원 공보관은 “코트넷 운영위원회에서 운영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삭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남지원을 관할하는 수원지법과 대법원 윤리담당관실도 경위 파악에 들어가는 등 사실상 징계절차에도 착수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본인 소명을 들어봐야겠지만 법관은 다른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학술적인 목적 외에는 공개적으로 논평해서는 안 된다는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2년 자신이 했던 ‘가짜 횡성한우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가 서면경고를 받았다.

 ◆윤석열 “선거법 기소는 상식적 처리”=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원 전 원장 등을 수사했던 윤석열(54) 대구고검 검사도 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그는 이날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선거를 앞두고 어떤 후보를 일관되게 지지하거나 비방하라는 지시를 내린 원세훈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처리였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이종명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심리전단장에 대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했었지만 서울고법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라고 명령했다”며 “이번 판결은 앞선 고등법원 판단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최현철·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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