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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선 "북괴위협 놀랄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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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한일외상회담은 한국측의 성실한 자세에 대해 일본측이 처음부터 얄팍한 책략을 구사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변칙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회담의 성패와는 관계없이 한일관계에 또 하나의 불유쾌한 감정의 찌꺼기를 남겨놓게 됐다.
이번 회담에 임한 한국정부의 태도는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상식과 합리주의」에 따라 인정해야할 사실은 인정하고 잘못된 점은 고쳐 한일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재구축하자는 자세다.
이같은 차원에서 한국은 일제36년간의 과거역사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일본만 잘못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지도력·단결력이 모자랐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와 함께 북괴의 군사력이 계속 증강되고 있음을 일일이 숫자를 들어 설명하고 과거15년간 한일경제협력의 실정, 일·북괴간의 교류 등에 대해서도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노신영외무장관은『65년 한일국교정상화이후 한일관계에서 일본이 한국을 도왔다하지만 그 결과는 2백5억 달러의 무역적자와 13억 달러의 공공차관뿐』이라고 지적하고 과연 이것으로 한국을 도왔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일본이 북괴와 거래를 함으로써 북괴를 국제사회로 유도해내 한반도긴장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말을 하고있으나 북괴는 오히려 대결자세를 더 강화하고 있으니 이는 일본이 북괴강경파를 고무시킨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같은 한국의 성실한 정공법에 「소노다」(원전직) 일본외상은 한반도에 북괴의 위협이 증가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북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한국과 모든 것을 상의하겠다고 대답하는 등 대체로 한국측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측은 회담장안과 회담장밖에서 표리가 다른 행동을 거리낌없이 함으로써 일본측의 성의에깊은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회담의 전망에 대해서도 암연을 던지고 있다.
「소노다」일본외상은 회담을 불과 20시간 앞둔 19일저녁 「원조가 필요하면 그렇다고 말할 것이지 안보문제는 왜 들고 나오는가」라는 식으로 회담을 앞둔 당사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상식밖의 얘기를 기자들 앞에 마구 쏟아놓았다.
과연 20일의 회담장에 나온 그의 태도는 언제 그런말을 했느냐 싶을 정도로 표변해 있었다.
그는 이번 회의가 한일간에 새로운 신뢰를 쌓아가는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말하면서 양국간「상호의존, 상호이해, 연대의식을 강조했다.
한국정세에 관한 논의에서도 노장관의 설명을 일일이 메모를 하면서 듣고 『그런줄은 몰랐다』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북괴의 위협이 증가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말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을 명백히 했다고 한국측 대표가 전했다.
그러나 하오 5시45분쯤 첫날 회의가 끝나자「소노다」외상의 태도는 다시 한번 바뀌었다.
회담이 끝난 후 양측은 회담내용을 2차회담이 끝날때까지 발표치 않기로 합의했는데 「소노다」외상은 자신이 그 약속을 깨고, 일본외무성 출입기자들에게 직접 회담내용을 설명했다.
더욱 회담의 초점이 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는 『한반도에 긴장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북괴의 위허이 증대되고 있다는데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했다』고 딴전을 부렸다.
한국측은 회담내용을 공표치 않기로 한 약속을 충실히 지켜 일체 입을 다무는 바람에 한국특파원들은 밤9시가 넘어 일본기자들에게 일본측의 브리핑 내용을 간접취재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호텔에서 TV밤뉴스를 통해 일본측이 약속을 어기고 회담내용을 공표했을 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일본측이 하고 싶은 말만 밝힌 사실을 확인한 노신영장관은『이럴수 있느냐』며 2차회의에는 녹음기를 비치토록 하라고 즉각 관계관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노장관은 『한반도 정세에 관한 인식에 일치를 보지 않았으면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라며 상대편에게 『일일이 다짐까지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 얘기 안 하는 편이 나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는 『새 정부를 대표해서 온 만큼 해야할 얘기는 상대방의 감정이 어떻든 다해야겠다』고 일본측의 얄팍한 행동에 좌우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 나타난「소노다」외상의 이같은 번복무상·방약무인의 태도가 회담전체에 어떤 영향을미칠것인지는 2차회담의 귀추를 지켜보아야알 일이지만 그의 거듭되는 이같은 태도는 일본국내에서도 문제가 되어 외상으로서의 자질마저 논의되고 있다.
그는 지난 6월19일 필리핀에서 「헤이그」미국무장관과 만났을때도 『공동선언은 조약과 같은 구속력이 없다』는 말을 했다가 물의가 일자 그런 말 한일 없다고 시치미를 땠고 8월8일 붸노스아이레스 방문때에도 『안보와 관련한 대한경협은 일체 불응하겠다』고 공언했다가 뒤에 이를 수정한 일이 있다.
그는 77년부터 79년까지 「우꾸다」(면전)「오오히라」(대꾸) 내각에서 외상으로 있을때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해외출장 21회, 연l백58일 방문국 46개국을 기록하는 등 대단한 활동력을 보였다.
무술에도 능해 검도7단, 합기도는 8단. 책략에 뛰어나 기량이 종횡이라는 평을 듣고 「이또」(이동지의)외상 퇴임때 함께 물러나려던 「다까시마」(고도철낭)차관을 구슬려 눌러 앉힘으로써「스즈끼」수상의 땅에 떨어질뻔한 체면을 세워준 것도 그였다.「소노다」에 대해서는 『함께 자살하자고 약속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그만이 절벽에 삐져나온 소나무가지를 잡고 살아있는 것을 보게될 것』이란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그의 성품과 행동을 단적으로 알려 주는 얘기다.
이번 외상회담은 한일두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고 자유세계, 아시아정세를 둘러싼 한·미·일 3국간의 공동방위노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이번 회담에서 바람직한 결론이 나지 앉는다 해도 대화의 길이 끊긴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회담의 상대방이 이같은 인물인 만큼 새로운 각오로 한일관계를 재구축 하겠다는 한국의 성의가 어느 정도 순수히 받아 들여 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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