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1)제74회 한미외교 요람기(5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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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양유찬 대사가 제네바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워싱턴대사관에서 공사로서 대사대리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필자는 본국정부는 물론제네바 현지에서 한국대표단을 돕고있던 이승만대통령특별고문「로버트·T·올리버」씨(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역임)등으로부터 정치회의 진척과 본국정부입장 등을 소상히 통보 받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무성과 매일 제네바회의 내용을 협의하느라 회의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제네바회의는 이미 실패한 것이며 향후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을 워싱턴 보도진에 발표하면서 필자도 자유진영간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는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5윌7일 이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해 『한국의 평화적 통일교섭을 이 이상 기다린다는 것은 공산측에 군사적 우위를 조장케 하며 실질적으로 우리를 멸망케 하기 위한 시간적 이득을 더 하게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제네바회의가 언제 끝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보다도 회의가 끝난 후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 말보다도 더 유효한 수단을 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대통령에게「아이젠하워」미대통령은 자신의 특사로「아더·딘」씨를 서울로 보내 한국측이 제네바 회의에서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해주도록 요구토록 했다.
특히「딘」 특사는 미국대표단이 5월5일 한국대표단에 제시한「남북한총선」「통일정부 수립 후 1년내 외국군 철수」등 7개항의 미국측 통한초안을 받아줄 것을 종용했다.
이에 대해 이대통령은『중공군은 선거전에 철수해야 한다』『남북한 전한 선거는 개헌에 의해 제도화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보아 대다수 국민이 그것을 원하는 것이 명백하게 되는 경우에 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대통령과「딘」특사의 줄다리기 협상은 한동안 계속됐다. 매일 상오 또는 하오 경무대에서 한국쪽의 백두진 국무총리와 손원일 국방장관, 미국쪽의「브리그스」주한대사가 배석한 가운데 절충작업이 벌어졌다.
「딘」특사는 이대통령이 태도를 바꿀 것 같지 않다고 판단, 이를 워싱턴에 보고했고 워싱턴은 이를 제네바의 미 대표단에 전달한 것이 틀림없다.
5월11일 정치회의의 전체회의에서 변영태 수석 대표는 세번째 연설을 하면서 유엔 감시하의 북한총선거만이 유일한 한국문제 해결 방안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 이튿날 「로버트슨」차관보,「영」극동국장 등 미 대표단이 한국대표단을 방문해 마치 7개항 초안을 언제 제의한 일이 있느냐는 듯, 변 대표의 연설을 칭송하고 앞으로「유엔감시하의 북한선거」만을 밀고 나가자고 다짐했다. 이 같은 미국대표만의 태도변화에는「딘」 특사가 타진한 이대통령의 태도가 제네바에까지 통보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5월13일 열린 참전16개국 회의에서 한국대표단은 또다시 실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카시아」필리핀수석대표가 남북한대표로 구성하는「헌법회의」를 또 거론했다.
영국의「이든」외상은『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실시되는 선거는 국제기관에 의해 감시되어야하며, 감시기관으로 선출되는 제국은 구태여 한국전쟁에 참가한 국가들에만 한정 될 필요가 없으며, 이는 제네바회의가 선출한다』고 발언했다.
「이든」이 말한「국제기관의 감시」는 한국이 주장해온「유엔의 감시」와는 다른 것이며 오히려 공산측이 내세운「중립국감시」에 유사한 것이었다.
「비도」프랑스외상도「적절한 감시권을 가진 중립국 업저버」운운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더구나 호주·뉴질랜드 등 영 연방국가들은 선거전에 중공군이 철수해야한다는 한국입장을 외면한 채 양군동시 철수원칙에 기울고 있었다.
「유엔감시하의 북한선거」원칙만을 우선적으로 밀어붙이자던 미국대표단은 우방들의 태도가 이처럼 나타나자 하루종일 발언도 하지 않다가 저녁7시쯤 되어 7개항의 초안을 다소 수정한 6개항의 새 초안을 한국 대표단쪽에 제시했다. 한국측은 미국이 우방들과 접촉해본 결과「유엔감시하의 북한총선」방안이 거센 반대를 받고있는 것을 알고 종전초안을 다시 들고나선 딱한 형편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하여 한국대표단은 처음으로 우리의 구체적인 통일방안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유진영의 한국통일을 위한 공동제안을 마련하기로 한 9개국 회의가 열린 5월14일『근문 전체회의에서 구체적 제안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계속>【한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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