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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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세기를 「이성의 시대」라고 규정지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20세기를 「폭력의 시대」로 규정짓고 말 것이다.
특히 20세기의 세기말에 접어들면서 폭력은 보편화하였고 일상화하고있다.
「폭력의 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강제력 신봉의 행태릍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지역·국가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대적」이고 「지구적」 인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니까「폭력의 시대」의 범죄양상도 그 같은 시대적이고 지구적인 폭력의 관행과 방법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다.
정치인을 저격하는 정치테러의 형태에서 뿐아니라,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동기없는 살인에 이르는 다양한 폭력양상은 그 점에서 이 시대의 사회적 병인으로 진단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살인사건들에서도 이 시대 병리의 증후들이 발견됨으로써 두려움을 금치못하게 된다.
세무원 청부살인에선 발달된 서구폭력조직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직업적 살인자인 「해결사」의 등장을 볼 수있다.
이는 폭력을 일삼는 무법자의 범주속에 있으면서도 특히 「폭력」을 상품으로 하여 불법과 결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악한 집단이라 하겠다.
이들의 행동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없고 오직「폭력」을 돈으로 환산해서 집행하는 점에서 「폭력의 시대」의 상징적 존재라 하겠다. 「돈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는 부당한 공리가 이들의 생활훈이 되고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서울 인현동 화장품가게 여주인 살인에서 보이는 우발살인은 오히려 동점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범행자는 강도를 목적으로 위협하다가 피살자가 반항하는 사이 엉겁결에 살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대문이다.
여기엔 살인의 예비는 있었으되 살인의 음모나 계획은 없었으며 「돈을 위해 살인하겠다」는 결의 까진 없었다.
이에 비해 윤노파등 3명 피살사건이나 인천 형수살인사건은 훨씬 비열하고 사악해 보인다.
현재 수사중이라 분명한 것은 아니나 윤노파 사건의 범인은 조카며느리라고 하며 인천살인의 범인은 형수로 지목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이 시대 폭력범죄의 사악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범죄는 우선 「돈을 위해서 무슨 짓이나 한다」는 정신의 소유자들로, 가장 잔혹한 수단을 동원하여 살인을 결행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선택한 범행대상자가 「가족관계」에 있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늘 폭력이 미만한 사회를 걱정하고 불신사회의 비도덕성을 개탄하여 왔으나 특히 인륜파괴현장에 대해서는 우리사회 존립의 가장 위험스런 증상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단순한 인륜관계의 격절이나 패륜이 아니라 가족을 희생의 제물로 하는 이 같은 범죄는 극히 위험한 사태라 하겠다.
물론 이 같은 범죄들은 소득 1천달러에서 2천달러미만의 사회가 흔히 겪는 사회병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경제발전단계에선 사회성원은 운을 추구하게 되고 금전을 부하는 과열분위기에 휩싸여 이성을 잃기 쉽다.
그러니까 이런 잔혹범죄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소득을 빨리 높이는 것이 첩경이다.
부지런히 또 열심히 일해 양의 시대에서 「질을 추구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이런 시대분위기가 조성되면 사회는 자연히 차분히 가라앉고 사람들도 비로소 이성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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