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겉치레·겉멋에 치우치면 실속 잃어버려|내용이 야무지면 기교 서툴러도 발전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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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제는 시조의 기본 틀에서 아주 동떨어진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투고 작품을 한 차례 걸려 놓고 나니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
시로서의 실속이 좀 야무진 것은 시조로서의 태깔이 미흡하고, 시조로서 웬만큼 태깔을 갖춘 것은 그 실속이 알차지 못하기 일쑤다. 앞의 경우는 시조에 대한 훈련을 조금만 더 쌓으면 저절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기에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뒤의 경우는 대개 겉치레 겉멋에 치우침이 그 빌미가 된 것이어서, 좀처럼 빠져 나오기 어려운 함정인 듯하다.
①<여름의 속살로 새벽을 열 치면>(윤연옥·『시골 찬가』초장)
②<창림천 고개 돌린 여울목 선잠 속을 맨발로 첨벙대는 유년의 밤 물길이 모래밭 그 모래 쓸어 안 잡히던 기억 하나>(이성목·『강가에서』첫 수)
발표의 기회를 놓친 이 두 편중에서 ⓛ은 시조의 그 어느 장으로도 부적격일 만큼 가락이 여물지 못한 채로 꽤 신선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조금만 유의하면 시조의 가락을 이내 회복할 수 있을 법 도하다. 그런데 ②는 미끈한 태깔을 갖추고는 있으나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길이 없다. 지나치게 겉멋에 사로잡힌 탓이다. 『소나기』(강혜규)는 깨끗한 작품 몇 군데 손을 보았는데, 특히 둘째 수의 종장끝구는 워낙<내 키보다 두 배는 되것다>여서 그 가락이 전혀 엉 뚱한 것이었다.
『여름노래 셋』(박미자)은 퍽 능숙한 솜씨. 시의 향기도 알고 종장에 역점이 두어진다는 사실까지도 이미 잘 터득하고 있다. 『목물』의 총장은「말갛게」라는 말을 떼어 내고 그냥<헹궈 내는 이 한때>로 마무리지었으면 좋겠다. 『밤의 소곡』(박수열)은 세 수 중에서 가운데 한 수만을 구제한 것이다.
군더더기를 잘라 내고 나니 오히려 그 초점이 한결 또렷하게 살아나지 않는가.
『말복』(조인호)은 그 중장이 워낙은<검둥개 죽은 넋은 더위가 한이었네>이었다. 표현이 너무 천박스러워 고쳤다.
『여름날의 옛집』(김완숙)은 55세의 중풍환자라는 단서가 붙은 이의 작품. 세수로 된 서툴디 서툰 것을 한 수로 고작 하여 굳이 선보이는 까닭은 역경을 노래로써 딛고 일어서려는 그 의기가 못내 가상해서였다. <박경용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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