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나일론참외」에 밀려 잃었던 옛 맛|「개구리참외」가 다시 인기 끈다|천원군 성환읍 매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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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취를 감췄던 개구리참의가 18년만에 선을 보였다.
성환 읍에서 천안 쪽으로 국도를 따라 2·5km. 포플러 숲 사이로 달콤한 향기가 흘러나오는 충남 천원군 성환읍 매주리-.
속칭 개구리참외로 불리는 성환 참외 본고장이다. 개구리 등을 닮아 초록색바탕에 검은 무늬가 수놓이고 쪼글쪼글 골이 팬 성환 참외는 지난l8년 동안 자취를 감춰 그 모양도 맛도 향기도 거의 잊혀 가고 있었다.
성환 참외가 이 땅에 처음 재배된 것은 한일합방직후. 지금의 성환 국립 종축장 자리에서 목장을 경영하던 일본인「아까호시」가 일본에서 종자를 들여와 재배한 것이 효시였다. 성환은 토양이 찰흙이면서도 배수가 잘되고 유기질 함량이 많아 성환 참외재배에는 최적 지였다.
이때부터 성환 참외는 전국에 그 위 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재배된 참의는 특상 품을 골라 매년 일본천황에게 진상품으로 보내졌다. 수분이 너무 많아 보관 및 운반이 어렵자 비행기까지 동원, 진상품 공수작전까지 별일 정도로 성환 참외의 성가는 높았다.
6·25동란 직후 밀려들어온 초컬릿·추잉검·파인애플·바나나에 우리네 입맛도 갑작스럽게 변해 버렸다.
참외만 하더라도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은천 참외(속칭 나일론 참의)에 밀려 모양도 흉하고 단맛도 덜한 성환 참외는 차차 모습을 감추었다. 성환 참외밭이 나일론 참외밭으로 변했다.
그러나 지난 l8년간을 고집스럽게 성환 참외종자를 보존하며 홀로 재배해 온 정견용씨(67·성환읍 매주리1구237)가 있어 오늘에 다시 성환 참외 마을을 일으켰다.
『내 별명이「심통영감」아닌가 벼. 주위 사람들이 뭐라 하든 내가 먹으려고 기르는데 웬 잔소리들이냐 며 개구리참외를 키 왔구먼.』
정 노인의 고집은 당뇨병이 문화병으로 급증하고 옛것을 찾자는 복고풍이 불면서 빚을 보기 시작했다.
성환 참외는 큰 덩어리는 한 개의 무지가 lkg. 나일론참의의 3배나 된다. 특히 수분함량이 수박 버금가게 풍부하고 당도가 은천 참외보다 떨어져 당뇨환자들의 여름철 과일로는 적격이라는 것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겉모양이야 이렇지만 껍질만 벗기면 홍조 띤 큰 애기 볼처럼 발그스레한 속살이 화채차림에도 그만이지. 과 육이 시원한데다 너무 달지 않아 하루종일 먹어도 물리질 않아 유.』
정 노인은 당질인 정재택씨(31)를 설득, 지난해에 실험적으로 3백 평에 성환 참외를 심어 봤다. 집「식구들 맛 한쪽 보기도 전에」자가용을 타고 온 손님들이 몽땅 사 갔다.
순소득 50만원. 대성공이었다. 이에 힘을 얻어 금년엔 매주리 91가구 중 11가구가 1천7백 평에 성환 참외를 심었다. 정 노인은 4백 평 밭에서 70만원의 순소득을 얻었다. 11가구의 순소득은 3백∼4백 만원으로 같은 면적의 벼 재배수확 1백80만원에 비해 엄청난 소득 차를 보였다. 나일론 참외의 2배 소득이었다.
낱개로 주먹만한 게 l천 원, 그보다 큰 것을 2천 원을 호가한다. 부산·상주 등 농산물 집하장에선 주문이 쇄도하지만 미처 댈 수가 없게 팔려 나간다.
『수분이 많고 과 육이 연해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요. 또 수송도중에 깨지는 놈이 많아 가격이 좀 비싼 편이지요.』
정재택씨는 요즘은 병원에서도 대량주문이 들어온다며 무엇보다 주민들이 각오를 새로이 하여 성환 참외의 명성을 되살리게 된 게 뿌듯하다고 한다.
내년에는 30여가구가 다시 참여, 4천∼5천 평에 재배, 8백여 만원의 순수익을 올릴 계획이다.
천안 역에 열차가 닿으면 귀따갑게 들려 오는 행상들의 외침『천안명물 호도과자 사세요』-. 올해부터 차장밖에는『천안명물 성환 참외가 나왔습니다』소리가 반갑게 들려 온다.

<성환=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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