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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갈배의 근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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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검찰당국이 기업공갈배들에게 철퇴(철퇴)를 가한 것은 우리나라 기업풍토쇄신을 의한 과감하고도 제기적인 조치이다.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비로소 법의 제재를 받게 된 것이다.
기업비위나 경영주, 또는 경영간부들의 부조리를 미끼로 금품을 갈취하는 악덕배들을 기업체 스스로가 고발할 경우, 검찰은 기업의 형사 귀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최근 만년필 제조회사의 명문인 신화사의 전 중역들이 그와 같은 수법으로 무려 3억8천여만원을 갈취, 세인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우선 이들 공갈배들에게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도록 하급검찰에 지시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종래에 문체의 기업이 세금을 추징 당하거나 경영주에게 형사책임을 묻던 관례와는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흔히 기업체들은 그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 양벌이 두려워 고발하기보다는 고통을 참는 편을 선택했었다. 이것은 기업외적인 문제로 기업의 낭비와 손실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업공갈배의 대부분이 기업내부의 일원이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그런 기업이 받아야 했던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인 손실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경영주의 신병구속사태까지 빚어지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경영상의 폐해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런 기업일수록 근로자들의 체감은 와해되고 생산성도 영낙한다.
이것은 한 기업의 문제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 기업의 몰락은 그 사회, 그 나라의 손실이며, 또 기업종사자들에게도 그 불행이 돌아간다. 이런 사태는 한 기업은 물론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더구나 밀고나 협박이 통하는 사회는 그 기풍마저 음산해져 밝고 쾌활한 분위기를 잃게된다.
고래로 우리 동양사회의 미덕은 따뜻한 가족의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동양인이 수천년을 두고 도덕적 지표로 삼아온 『논어』 에도 이린 비유가 있다.
어느 날 공자는 초나라의 중신인 섭공으로부터 이런 질문 받았다.
『우리 고을엔 정직하기로 소문난 궁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아비가 남의 양을 훔쳤더니 아들이 고소를 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엄연한 절도(절도)였다. 그러나 공자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다르다. 아비는 아들 위해 죄를 숨겨주고, 아들은 아비를 위해 죄를 숨겨준다. 그 속에 곧은 마음이 있다』
(오당지직자 이어시. 부위자위 자위부은, 직재기중의 -「자노」편)
바로 2천년전의 이 교훈은 오늘의 시속, 오늘의 사회에선 낡은 윤리의 덕목이라고 부인될 것인가.
중국 춘추전국시대엔 도둑이 끓고, 부패가 만연해 관서에선 밀고자들에게 상금까지 주며 그것을 장려했었다.
그러나 공자는 단호히 부자의 도리를 밝혔다. 한 가족의 인간적 유대는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천륜이라고 설파한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가「메리메」의 소설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경찰에 쫓기는 범인이 어느 민가에 뛰어 들었다. 뒤늦게 그 뒤를 따라온 경관이 이 집 소년에게 금시계를 주고 범인이 숨은 곳을 알아냈다.
소년의 아버지는 저녁 늦게 노가해 그 사실을 알고, 그는 아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었다.
섬뜩한 얘기지만 밀고는 이처럼 오늘의 서양사회에서조차 악덕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배신으로 응징(응징)되고 있다.
이웃 일본만 해도 일찍이 역사를 통해 그런 교훈을 남겨놓고 있다. 영지들의 모반으로 천하가 어지럽던 전국시대에 하극상의 풍조가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었다. 누구라도 능력과 마음만 있으면 영주를 해치고 「전국대명」을 세울 수 있었다. 한때 모반과 배신이 곧 그 시대의 질서이며 기풍이었다.
이런 망국풍조를 타고 덕천가강이 나타나 비로소 천하를 평정했다. 그는 물론 힘도 있었지만, 생활윤리의 확립을 통해 천하의 법도를 다스렸다. 배신자가 있는 사회는 잔혹할 정도로 씻은 듯이 없애버리거나, 당사자를 낭인의 신분으로 떨어뜨려 그 사회에서 버림을 받게 했다.
덕천은 무려 3백년을 두고 의리와 인정에 바탕을 둔 이른바「충」을 지상의 덕목으로 미화했었다.
이것은 오늘의 일본사회에까지 맥락이 이어져, 근자엔「록히드」사건의 연루자들이 서슴없이 자살을 해버린 사례도 있었다. 자신과 함께 고락을 나누던, 같은 조직의 일원으르서 법정증언을 통해 보스에게 누를 끼치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법속이 다론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의리나 인정을 생명처럼 여기는 그들의 윤리감각이랄까, 인간적인 신의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바가 있다.
오늘의 일본기업들이「기업가족」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이루고, 또 그것이 저력이 되어 일본특유의 경영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선진국들이 선망하고 있다. '
결국 노사의 협조는 이런 가운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일본은 온 세계가 비명을 지르는 두차례의 에너지 위기도 수월하게 겪을 수 있었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서「가족의식」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 일본은 오히려 위기를 겪으며 한편으로는 품질향상을 이룩하고 신기술을 개발해 스스로 힘을 쌓고 능률을 올릴 수 있었다. 바로 지난해 일본만은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5%의 경제성장을 기록했었다.
의리와 인문가족의 일체감, 단결력이 위기극복의 방편이며 무기가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은 분명 세계의 어느 민족에 못지 않은 많은 장점과 미덕을 갖고 있다. 역사상 무수한 풍상을 겪으면서도 오늘까지 의연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우리는 원기와 저력을 놔진 민족이다.
그러나 근세에 일제의 침략, 6·25와 같은 국난을 겪으면서 실로 뜻하지 않게도 모함과 밀고와 배신의 풍조가 생겼다. 민족의 장내를 의해서도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도 초연한 존재는 아니어서 어줍지 않은 로비활동이 기업사이의 페어플레이를 침해하고 때로는 관의 지시나 권력의 응달에 온존하려는 타성마저 갖게되었다. 밀고나 공갈·협박 따위가 통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부작용의 하나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기업들은 근면과 협동과 자기희생정신에 의해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될 때이다. 또 실물경제에는 필연적으로 다소의 먼지는 끼게 마련이다. 모처럼 국가적으로는 활기를 찾고, 기업도 오랜 침체를 벗어나 회생의 국면에 접어들려는 마당에 고무적인 단안을 내린 검찰의 용단을 평가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건실한 경영과 단합된 노력을 통해 번영을 도모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에 보답하는 책임을 다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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