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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본성 자제하고 다양한 사고한다면 당신은 ‘놀라운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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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24면

책에 나오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 구르지예프는 정교회의 신비주의 전통,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Sufism)과 동양의 종교 철학을 융합한 체계를 선보였다.

사람은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미국인들을 비롯해 서양 사람들은 이집트를 좋아한다. 표지에 고대 이집트 풍물이 나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평소보다 많이 팔린다. 티베트 매니아도 많다. 1968~69년에 방영된 영국 TV 시리즈 ‘챔피언’에는 네메시스라는 유엔 비밀 조직 요원 3명이 나온다. 그들은 티베트에서 텔레파시와 예지력을 얻어 악과 맞서 싸운다.

<37> 게오르게 구르지예프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

달라이 라마의 인기도 서양사람들이 티베트나 동양을 신비스러운 지혜의 원천이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와 전통적인 서구 문명에 대안을 제시하려는 서양의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4대 분야 혹은 원천은 영성주의·신비주의·환경주의·전체론(holism)이다. 모두 동양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르메니아 출신 영성가 게오르게 이바노비치 구르지예프(1866?~1949)는 ‘뉴에이지 운동의 원조’‘20세기의 영적인 스승’이라 불린다. 다른 극단의 평가는 그가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괴승 라스푸틴(1872?~1916)과 미국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1894~1991)을 합쳐놓은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성 종교 교리와 의식에 반기
확실한 것은 구르지예프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신비주의(神祕主義)가 만났다는 것이다. 다른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구르지예프는 기성 종교의 교리나 의식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또 확실한 것은 많은 유명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축가·저술가 프랭크 라이트(1867~1959), 영국 올더스 헉슬리(1894~1963), 헝가리 출신 영국 작가 아서 케스틀러(1905~1983), 『메리 포핀스』(1934)의 저자 패멀라 트래버스(1899~1996)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서구의 대항문화(對抗文化·counter culture)에도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

구르지예프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혼합주의·종합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한 이야기들은 동서양 신비주의자들의 영성 문학과 겹친다. 또 구르지예프가 한 이야기들은 ‘영성 구루’로 각광 받는 디팩 초프라가 하는 말들과도 공통분모가 많다.

이런 얘기들이다. 인간은 보다 높은 수준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집중력을 키우면, 잠재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몽유(夢遊) 상태다. 환경의 자극에 자동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이 아니라 그저 결과로서 살고 있다.

그런 로봇 같은 삶에서 탈출하려면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관찰하면 몇 가지 이런 사실들이 드러난다. 알고 보니 나(I)라는 존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수많은 나들(I’s), 서로 충돌하는 나들이 있다. 구르지예프는 “어떤 두 사람의 본질상 차이는, 광물(鑛物)과 동물의 차이 사이만큼이나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안의 나들 중에는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작은 나로 구성된 게 나다. 그 중에서 진짜 나를 찾아라.

“당신이 모르는 사람 빼고는 모두다 이상하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러 나를 발견하고 보니, 그 중에 하나의 나는 이상하다. 나 안의 그 녀석들은 기괴하다.고약하다. 쩨쩨하고 치사하다. 왜 여러 나의 모습을 발견해야 할까. 그래야 허물 많은 남들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르지예프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이 창안한 ‘자기계발’ 프로젝트이자 시스템인 ‘노력(The Work)’을 전수받으려면 스승이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노력’은 ‘제4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제1~3의 길은 이슬람의 파키르 수도자, 기독교의 수도사, 인도의 요기들의 수행법으로 구성된다. ‘제4의 길’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어떻게 될까. 지성·감성·본능이 균형 잡힌 인간이 된다.

구르지예프 방식의 특징은 일상 생활 속에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세를 등지지 않아도 된다. 그의 방식은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을 중시한다. 그가 권장하는 춤은 ‘무브먼트(Movement·움직임)’라 불린다. 신성한 춤, 신성무(神聖舞)다. 대체적으로 수피 신비주의 춤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으로 평가된다. 구르지예프는러시아 작곡가 토마스 하트만(1885~1956)의 도움을 받아 170곡의 피아노곡을 지었는데 그 중 일부가 무브먼트에 활용된다.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 Gurdjieff을 쳐보면 많이 올라와 있다. 수피 춤뿐만 아니라 인도의 춤이나 중국 태극권을 연상시키는 그의 춤동작은 4500년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묘한 느낌을 주는, 중독성 있는 춤과 음악의 앙상블이다. 구르지예프는 또 환경의 변화가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을 깨는데 특효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자신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여행을 했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우리말(왼쪽)과 영문판 표지.

1979년엔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는 “내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말라. 스스로 발견하라”는 말도 했지만 자신이 쓴 글은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1927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가 쓴 세 책 중에서 가장 쉬운 책이다. 이 책은 『베엘제부브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만, 삶은 실재한다』와 더불어 삼부작을 이룬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1979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감독은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이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서전이자 여행기이자 영적 순례의 기록이다. 그가 말하는 ‘놀라운 사람(remarkable man)’이란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본성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을 공정하고 관대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의 무대는 근동·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다. 여행 과정에서 사제에서 왕족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책의 내용은 믿기 힘들다. 상당 부분 꾸며낸 이야기 일수도 있다.

아무래도 영성주의·신비주의는 종교와 가장 가깝다. 구르지예프의 종교관은 책에 나오는 다음 몇 마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모든 종교를 존중하라. 객관적인 도덕을 신(神)이 부여했다면 주관적인 도덕은 사회나 문화, 전통이 만든 것이다. 네 자신이 된 다음에는 신도 악마도 중요하지 않다. 소금이 없으면 설탕도 없다. 스스로를 자각하는 신앙인은 자유롭고 감정 중심으로 믿는 신앙인은 노예이며 기계적으로 믿는 신앙인은 우둔하다. 여러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데 ‘이론 만들기(theorizing)’는 필요 없다. 여러분 내면에 간단하고 적극적인 이성의 행사만 있으면 된다. 죄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게 죄다. 신앙을 잃고 싶다면, 사제와 친구가 되면 된다.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무엇이 죽어야 하는가.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잘못된 확신, 자기애, 이기주의가 죽어야 한다. 나의 가르침은 비전(秘傳) 기독교(esoteric Christianity)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신(神)이 직접 가르쳐준 비결(祕訣)을 유지해온 형제단(brotherhood)이 예수 탄생 1000년 전에 창립됐다. 예수도 이 형제단 소속이었다.

그의 교육 방식은 선사(禪師)의 방식을 방불케 했다. 오만 가지 몸동작과 표정을 지으면서 제자들보고 따라 해 보라고 했다. 갑자기 ‘그만’하라고 외쳤다. 제자들에게 해답을 주기보다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를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은 오늘날에도 15~30명 규모의 조용한 모임을 가진다. 구르지예프 모임에는 약간의 비밀주의가 있다. 세간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의 후예들은 포교는 하지 않는다. 주로 추천을 받아 멤버가 된다.

인간 구르지예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를 만나는 사람은 그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구두닦이, 장사, 관광 가이드 등 어렸을 때 젊었을 때 안 해본 일이 없다. 의문이 생기면 풀어야 하는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는 음식과 여자를 좋아했다. 유부녀·제자 등 7명의 여인으로부터 7명의 자식을 뒀다. 불같이 화를 내는 때도 많았다. 꾀를 써서 돈을 많이 벌었다가 사정이 생겨 탕진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가 깨달았기 때문일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깨달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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