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내 마음 속 ‘선배 어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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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27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은 번뇌 속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세상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순리대로 일이 잘 풀렸다는 말은 쉽게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는데 나름대로 온갖 변칙을 다해 처리했다며 나름의 비법을 늘어놓는다. 원칙을 위반했어도 결국엔 목적에 맞게 되었다는 것인데, 하지만 이는 자기 입맛에 맞는 당위성의 집착은 아닐까. 그 허상 속에 자신이 가려진 것은 아닐까. 옛 경전에 ‘허공 꽃이 어지럽게 춤 춘다’는 문장이 있다. 허공 꽃은 실체가 없다. 다만 환상을 아름다운 꽃이라 생각하고 좋아할 뿐이다. 그게 공화(空花)다.

어느 강연에서 스님이 법설을 하던 도중 질문을 받았다. 남자 대학생이 “스님, 연애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순간 청중은 서로를 바라봤다. 스님의 답변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뜬금없는 질문에 스님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스님은 눈 하나 까딱 않고 “연애는 말이지, 한과처럼 바삭바삭하게 해야 돼. 추하고 비겁하고 찐득찐득하게 하지 말고. 싫다고 하는데도 찐득찐득 달라붙거나 매달리지 말고, 아니다 싶으면 샤프하게 헤어져!” ‘샤프’라는 말에 대중은 크게 박수를 쳤다. 과연 연애를 해보고 스님은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그냥 짐작으로 하는 말일까. 문득 우리네 삶은 바삭바삭한 걸까, 아니면 찐득찐득 한 걸까 궁금해졌다.

청년 시절 원불교에 오기 전 행자 같은 간사 생활을 3년 했다. 그때 수행이 철저하기로 알려진 어른 법사님께 이런저런 말씀을 올리면 “너나 잘해. 그리고 남 탓하지 마”라는 핀잔을 종종 듣곤 했다. 나이 40이 다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잘 되었다고 말하면 이내 선배 법사들로부터 호령이 떨어졌다. “잘난 체 하지 마라. 원래 잘난 사람은 나서지 않는 법이다. 못난 놈들이 서성거리고 깝죽대는 거다.” 함부로 나서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허튼 짓 하지 마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배는 적당히 후배 기죽이는 게 품격이고 멋인가 보다. ‘전탈전수(全奪全受)’라는 옛말이 있다. ‘온전히 버릴 줄 알아야 온전히 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름 없는 풀도 온전히 말라 물기가 하나도 없어야 바람에 자유롭게 흔들리지 않나. 선어록에서 자주 쓰는 ‘끽다거(喫茶去)’도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뜻도 모르는 놈, 저기 가서 차 한 잔 홀짝거리고 사라져’라는 일종의 꾸지람이다.

얼마 전 한 선배는 이렇게 당부했다. “함부로 글 쓰지 마라, 시비에 끌리지 마라. 출가한 교무에게서 교무 냄새가 나지 않으면 왜 출가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교무 노릇 제대로 하려면 바보 소리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9월 법회의 주제도 ‘계문만 잘 지키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로 정했다. 첫째 욕하지 말고, 둘째 술 과하게 먹지 말고, 셋째 성질내지 마라. 이것만 잘 지켜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홀함이 없을 듯싶다.

소태산 대종사는 전서 요훈품에 이렇게 썼다. “참 자유는 방종을 절제하는 데서 오고, 큰 이익은 사욕을 버리는 데서 오나니. 그러므로 참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계율을 잘 지키고, 큰 이익을 구하는 사람은 먼저 공심(公心)을 길러야 하느니라.”

나도 후배에게 시 구절 하나 전하고 싶다. ‘달빛 들어 솔소리 희고, 솔잎은 달빛 머금어 차게 젖어 있네.’(月入松聲白 松含月色寒) 조선 후기의 선승인 함월의 글이다.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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