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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아직도 높기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무리 은행이 친절을 외쳐대도 일반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높고 멀게만 느껴진다.
죄지은 일이 없어도 파출소앞에만 지나가면 공연히 마음이 이상해지듯이 은행문 열고 들어가기가 그렇게 간단치 앉다.
푹신푹신한 객장 소파에앉아 있어도 왠지 머리가 쭈뼜쭈뼜해지고 어색하다.
높은 천장이 불안하게 느껴지고 권총찬 청원경찰관이 나만 주목하는 것같다.
카운터 저쪽 안에까지 들어가 한참동안 책임자급과 이야기를 나누는 고객을 보면 자기와는 매우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별로 나쁜 일이 없는데도 번호표 부르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부르기가 무섭게 일을 마치고 은행문을 뛰쳐나온다.
굳이 특별한 이유를 따지지 않더라도 은행이라는곳은 이처럼 왠지 서먹서먹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심리적인 강박속에 자리잡고있다.
요행히 아는 사람을 통해 몇백만원 은행대출을 받게되면 그 고마움(?)에 왠만한 불편쯤은 다 참는다.
담당행원은 마치 자기주머니에서 돈을 빌려주는것처럼 으스대도 할수없다.
분명히 갖다준 서류를 자기들이 잃어버리고서 또 가지고 오래도 역시 답답한 것은 돈비는 쪽이다. 금력도 당당한 권력임을 실감하게 된다.
심지어 이런 중소기업인도 있었다. 『우리는 1%의 대출커미션을 주는데 얼마전 모신문을 보니까 통상 2%는 줘야한다고하니 은행측이 얼마나 서운하게 생각했겠느냐』
그러니 다음 대출받을 때가 큰일이라는 고민이었다.
은행이 꼭 있어야만 예금할수있고 돈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금융관행은 은행권밖에서 이루어져왔고 그것에 익숙하다.
은행에 예금한 계수가 적다고해서 우리나라 사람의 저축심운운하는 것도 문제다.
은행예금을 기준으로 해볼때는 다른나라에 비해 분명히 심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국민1인당 가처분소득에 대한 개인의 금융자산보유액이 일본은 17.7%, 대만은 1.57%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0.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은 저축을 얼마나 하느냐가 아니라 각국 국민들이 『은행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가계저축률이 얼마니하는 비교 역시 마찬가지다. 은행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돈거래는 제외되어 있을뿐 아니라 실물저축 역시 엄연한 저축수단임을 간과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은행에 예금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지 저축심부족이 아닌것이다.
한국은행의 추정으로는 기업들이 빌어쓰고 있는 사채시장규모만 줄잡아 7천억원. 여기에다 동네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계를 포함해 개인들사이에 서로 저축을 하고 융통을 해주는 시장규모도 4천∼5천억원에 달할것으로 어림 잡고있다.
은행에 가서 시달리는 것보다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계드는것이 차라리 속편하다는 생각들이다.
위험부담을 충분히 상쇄시킬만큼 다급할때 손쉽게빌어 쓸수있고 불쾌감도 겪을 필요가 없다.
흔히들 은행예금을 안하는 또하나의 이유로 인플레를 들고 있지만 그것도 충분한 설명이 못된다.
사람들이 꼭 금리만 보고 예금을 하는것은 아니지 앉는가.
이웃 일본의 경우 인플레가 심할수록, 경제가 불안할수록 서민들의 저축은 급격히 늘어났었다.
은행도 어려울때일수륵 친절경쟁이 치열하다. 은행마다 특별상담 창구를 설치하고 이 어려운때에 당신의 재산을 어떻게 운용해야 좋을지를 모색해준다.
은행은 사람들의 가장 신뢰할수 있는 친구이고, 사람들은 그 친구에게 서슴지않고 돈을 맡기는 것이다.
설령 금리를 지금보다 더 내린다고해도 은행을 이용하면 편리하고 이롭더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은행예금은 저절로 늘어날 것이다.
은행중에서 코흘리개 취급을 받던 국민은행 예금이 허울좋은 시중은행들보다도 많아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쉽게 납득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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