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의 3대 요건은 안목·경제력·신용|「예화랑」 대표 이숙영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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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좋아하는 그림을 벽면 가득 붙여놓은 공간 속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길목 구석구석마다 문화의 향기가 배어 나오는 듯한 인사동 거리 한편에 벽 전체를 하얗게 꾸민 6평 남짓한 예화랑이 있다.
그림 앞에선 예화랑 대표 이숙영 씨(34)는 불별 더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 화랑이 생긴 것은 이대원 씨가 경영하던 반도화랑이 시초. 화랑은 화가와 애호가를 잇는 징검다리로서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나 아직도 기획전을 가지는 국내화랑의 수는 40여 곳을 넘지 않는 실정이다.
78년 문을 연 예화랑은 일천한 역사를 가졌지만 기획전을 자주 갖는 화랑.
이씨는 「여성강세」가 두드러진 화랑 가에 뒤늦게나마 「내일」을 기대하며 뛰어든 여성경영인이다.
이씨와 그림과의 인연은 매우 오래된다.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천일화랑을 경영했던 이완석 씨가 바로 그의 부친. 또 그 자신도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이기도하다.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 역시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집안이었어요. 제가 자라온 환경이 서양화 위주였음에 반해 시댁은 동양화를 아끼는 댁이어서 결과적으로도 우리 회화의 2대 분야를 고루 익힐 수 있었어요.』
이렇게 그림에 익숙해져 있었던 탓인지 뭔가 할 일을 찾아보니 자연스럽게 화랑경영이 떠올랐었다는 설명이다.
처음 문을 연 곳은 인사동 네거리근처 2층. 78년5월6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근대명가서화전」이 바로 개관기념으로 마련된 첫 번째 기획전이다.
한국최초의 미술단체인 서화협회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열린 이 전시회를 시작으로 3년 동안 11회의 기획전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이씨가 맨 처음 판 그림은 해강 김규진 화백의 죽 그림.
『그림이 새로운 소장가의 손에 넘겨지기 위해 포장을 하는 동안 줄곧 울고싶은 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도 걸려있던 작품이 팔려갈 때는 어머니가 딸을 시집보낼 때의 서운함이 어떤 것인지 알듯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보람도 많이 느껴요. 작품을 구입해간 고객으로부터 두고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땐 정말 흐뭇합니다. 미술품은 고가품이기 때문에 고객의 재산을 내가 보호해준다는 의무감과 자부심마저 느낍니다.』
아직 미술시장이 넓지 않은 까닭에 대개 한번 그림을 사간 사람이 또다시 그림을 찾는 경우가 많아 초기에 사귄 구매자들과는 아주 친해져 가족처럼 지낸다고 했다.
그는 화상의 3대 요소를 안목·경제력·신용이라고 했다.
어떤 사업이든 신용은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화상에게는 그림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이 더 첨가된다.
그가 겪은 가장 어려웠던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을 가려 뽑아내는 것. 이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림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2년간은 전시회란 전시회는 가리지 않고 보고 다녔다고 했다.
『지금도 새로운 화가가 작품전을 한다면 열 일을 제쳐두고 쫓아가는 게 습관처럼 돼버렸다』며 웃는다.
『화랑에서 작품을 원할 때 작가 분이 잘 내주지 않아 어려운 때도 있지만 그것 못지 않게 화랑간의 윤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이익에 급급하기보다는 긴 안목에서 꾸준히 최선을 다해 가는 「거북 심정」으로 조금씩 양보해 가면 작가-화랑-애호가 모두에게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미술인구가 차츰 늘어나고 애호가도 많아져 가는 추세에 있어 길게 보아 화랑은 장래성이 있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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