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명무당 한자리에…|제1회 무속예술 발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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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짧고 짧은 인생을 꿈같이도 지냈구나. 허송세월…』애절한 사설이 한 토막씩 끌날 때마다 북·징·정쇄·제금이 일제히 악을 쓰고 울리면서『얼쑤-』하는 추임새가 곁들여진다.
연두색 끝동과 고름을 붙인 흰색 치마저고리에 금박을 놓은 남색 쾌자를 덧입은 무당은 머리에 분홍빛 종이꽃까지 꽂았다.
그의 목소리는 제 명을 다 못살고 간 슬픈 넋을 달래느라 사뭇 처연하다. 21일(하오2시) 한국무속예술 보존회(회장 김숙자)주최로 한국의 집 잔디마당 민속극장에서 열린 제1회 전국무속예술 발표회의 한 장면. 지금 동해안 지방에서 전래되어온 오귀굿이 공연되고 있는 중이다.
한 손에는 울긋불긋 그림이 그려진 채색부채를, 다른 한 손에는 한지로 만든 술을 들고 춤추고 사설을 읊는 김유선씨를 비롯하여 김석출·신석남·김명대씨 등 무격(무당파 박수) 들이 출연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몹쓸 돌림병에 죽은 사람. 거리 횡액에 들러 죽은 사람, 모두들 재 명을 못다 하고 죽은 사람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이 오귀굿이다.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데려가기 위해 염라대왕이 보낸 사자를 위해 극락으로의 길을 닦아주는 제주도 차사령맞이 큰 굿 뒤에 관객의 신명을 돋우기 위해 행해지던 진도의 북 놀이도 공연되었다.
가족 중 벼슬을 한 사람이 생겼을 때, 마을의 경사가 있을 때 행해지던 경기도 전래의 경쾌한 푸살, 큰 굿 뒤에 한량들이 멍석으로 만든 소(우)를 쓰고 나와 무당들과 재담을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여흥 굿인 쇠머리 굿도 공연되었다.
최근 l, 2년 사이 새로 열기 시작한 우리 것에 대한 높아진 관심탓인 듯 뜨거운 날씨에도 4백여명의 관객들이 모여 잔디마당을 가득 매웠다. 그중에는 한국학 등을 연구하는 노란머리의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예술의 모태이자 생활문화의 중요한 부문의 하나인 무속의식과 문화의 보존을 위해 마련된 것이 이번의 발표회. 출연자 30여명 중 안사인·박병천씨는 인간문화재이고 그밖에 대부분이 전국의 이름 있는 무당과 무격들이다.
『공연장은 모두 신앙성 보다는 연회성과 예술성이 짙은 것으로 새로 창출될 한국예술의 씨앗을 던진다는 의미를 이번 발표회는 갖고 있다』고 민속학자 심우성씨는 얘기한다. <박금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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