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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팔 못 써도 오른팔 남았소" 문태종의 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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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농구월드컵에서 검은색 보호대를 감고 뛰는 문태종. 그의 목표는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뉴스1]

‘불혹의 슈터’ 문태종(39·LG)이 아프다. 그래도 참고 뛰었다. 태극 마크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다.

 문태종은 4일(한국시간) 스페인 라스팔마스에서 열린 2014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D조 리그 4차전 리투아니아와 경기에서 30분43초를 뛰었다. 한국과 리투아니아(세계 4위)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시간을 코트에 있었다. 이날 문태종은 3점슛 3개를 포함해 15점을 넣어 한국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한국은 리투아니아에 49-79로 크게 져 4연패를 당했지만 문태종의 고군분투는 귀감이 될 만 했다.

 문태종은 큰 부상을 당했는데도 투혼을 발휘했다. 지난달 31일 호주와 2차전 도중 문태종은 왼팔꿈치 부상을 입었다. 이미 대회 전부터 왼팔꿈치 점액낭(물주머니)에 피가 차올라 심하게 부었는데 호주전 도중 그 부위가 터진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유재학(51) 대표팀 감독은 “잘못 움직이면 나중에 수술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문태종은 이번 대회에서 더 이상 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 다음날인 1일 문태종은 다시 농구공을 잡았다. 유 감독은 문태종에게 “선수들 연습하는 걸 지켜보라”고 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팔꿈치에 붕대를 동여매고 가장 늦게까지 슈팅 연습을 했다. 정태중 대표팀 트레이너는 “주사기로 부풀어 오른 부위에서 피를 빼내 움직이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래도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문태종은 슈팅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공을 던졌다.

 문태종은 부상 뒤 치른 두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검정색 보호대를 차고 자신보다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유 감독은 “아시안게임도 남아 있어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본인이 자발적으로 경기에 나서겠다고 했다. 책임감이 대단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문태종은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다. 생애 처음으로 농구 월드컵 무대를 밟은 문태종은 “영광스럽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의 나라’를 대표해 월드컵을 뛰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문태종은 “내 나라를 대표해서 태극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는 건 정말 명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만큼 훈련도 열심히 한다. 20대 초반의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팀 훈련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소속팀과 대표팀 동료인 김종규(23)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태종이 형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했다. 문태종은 “ 아시안게임에서는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라스팔마스=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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