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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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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김준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겸 경제에디터
김준현
경제부문 차장

경제 담당 기자 입장에서 요즘 참 재미없다. 흥을 돋우는 좋은 경제뉴스가 없어서다. 살벌한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의 길이 잘 안 보인다. 중국 샤오미 돌풍에도 애플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뚫었다. 폐쇄형 생태계의 장점을 단단히 누리는 덕분이다. 점유율 10%만 유지해도 콘텐트 부가가치만 높이면 수익성은 거뜬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고전 중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2년 만의 최저치다.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날 때면 이런 심란한 마음 더해진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진통과 답답한 우리의 현실이 교차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런 기분 100% 날려버릴 묘책이 있다. 광장에서 길 하나 건너 KT 광화문 사옥 1층 ‘드림엔터’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드림엔터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원하는 창업 교류 공간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꿈 하나로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의 열정은 광장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족하다. 3일 저녁 각각 꿈·도전·혁신·열정이라 이름 붙여진 드림엔터 내 4개 회의실은 20대 초·중반 젊은이들로 꽉 찼다.

 박용호 드림엔터 센터장은 “창업을 준비 중이거나 막 시작한 젊은 사업가들”이라고 귀띔했다. 1층이 예비창업자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2층은 창업한 이들의 공간이다.

 2층에서 만난 최인석(25)씨는 지난해 7월 창업했다. 군 제대 후 3학년에 복학해야 하지만 일이 좋아 학업은 미뤘다. 그는 “실패가 두렵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릴 때 실패하는 게 충격이 덜하지 않을까. 일은 고되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말 문을 연 드림엔터에 최씨처럼 창업을 꿈꾸며 다녀간 방문객은 지난 8월까지 4만 명. 비슷한 일을 하는 영국 런던의 구글 캠퍼스 지난해 방문객이 7만 명이었으니 우리의 창업 열기가 런던 못지않은 셈이다.

 이제야 이해하겠다.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가 한국 창업기업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이유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얘긴가.

 “과연 우리나라에 투자할 만한 창업기업이 그렇게 많을까. 1조원 운운은 립 서비스에 가깝다.” 벤처캐피털 업체 관계자의 진단이다.

 진단의 근거는 이렇다. 우리나라 정보기술 업계에선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시기가 있다. 김대중 정부가 무리해 가며 지펴 놓은 ‘벤처 불씨’를 노무현·이명박 정부 10년이 꺼트리고 만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결과 화끈하게 밀어줄 창업 기업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 꺼진 불씨를 박근혜 정부가 되살리려 한다. ‘창조경제’란 이름으로. 그런데 위태위태하다. 언제부턴가 창조경제란 단어만 들어가도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노무현 정부의 ‘혁신’,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의 말로를 연상케 한다. 그래선 안 된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정치 구호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숙명이다. 실패하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꺼질지도 모른다.

 그래, 창조경제로 포장하지 않아도 좋다. 쇼가 계속되기만 하면 된다. 드림엔터 한쪽 구석에서 오늘도 밤을 새워 꿈을 지피는 젊은이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저녁 10시쯤 드림엔터를 나왔다. 저 멀리 마이크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농성장 집회는 끝나지 않았나 보다.

김준현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