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타고 터진 인종갈등 응어리 사흘째 계속되는 영국폭동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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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구에서도 비교적 조용하던 영국사회에 갑자기 폭동의 선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3일 인도·파키스탄계 주민들이 모여 사는 런던 서부의 서돌지구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난 이래 리버풀에서도『전시의 폭격 당한 도시』를 방불케하는 방화·파괴·약탈사태가 사흘째 계속되고있다.
뒤 이어 맨체스터와 런던 북부의 우드그린 지역에서도 경찰과 청년들간에 충돌사건이 일어났다. 리버폴 폭동에서는 20여동의 건물과 몇십대의 차가 불타고 2백여명의 경찰관이 부상했다.
모두 경찰과의 사소한 충돌에서 확대된 일련의 폭동은 아직 인종분규로 규정할만한 표면적 기미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신 나치계의 「스킨·헤드」 (대담한 백인청년들)와 인도계 청년들이 충돌한 서들지구 폭동을 제외하면 모두 흑·백인이 섞인 군중들과 경찰과의 충돌이었다.
영국신문들은 폭동을 보도하면서『흑인과 백인 주민들』이 같이 투석, 방화·약탈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보수계인 더타임즈 지는 황폐한 도심지의 빈민지역을 역대정부가 등한히 한 결과라는 쪽으로 ,책임을 현 보수당 뿐 아니라 노동당에도 분담시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진보적인」 ?助?지는 실업자를 증가시키고 특히 빈민층에 큰 타격을 준 「대처」 내각의 통화긴축 정책이 그 주인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디언지의 한 평론가는 이번 폭동이 인종을 초월해서『있는 자』에 대한 『없는 자』 의 폭동이라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의 측면을 과소평가 하려는 영국언론들의 가상할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폭동이 일어난 지역이 하나같이 외래민족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지나칠 수 없다.
그들의 폭동에 몇몇 백인청년이 섞여있다는 사실만으로 인종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물론 인종간의 갈등을 필요이상으로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번 폭동에는 전통적 인종차별의 요소가 강한 기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미국처럼 인종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면서도 음성적인 인종차별이 구조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외래인종은 사회의 밑바닥에 깔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가디언지의 평론가의 『가진 자』에 대한 『안가진 자』 의 폭동이란 규정을 받아들인다 해도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인종분규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 전체의 실업자율이 11%인데 가장 격렬한 폭동이 일어난 리버풀의 실업률은 20%이다 .그런데 폭동이 일어났고 흑인들이 가장 밀접해 살고있는 톡스테지구의 실업률은 최고 60%로 보도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젊은 흑인이 말했듯이 최하의 주택과 최하의 공공시설 속에서 자라나 최하의 교육을 받은 젊은이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실직자가 되어야 하는 불행한 경우가 흑인 젊은이에게 떨어질 가능성이 백인에 비해 몇 배나 많은 것이다.
그런 구조적 차별 외에 국민전선 또는 브리티시무브먼트 같은 백인 우월주의를 구호로 삼고있는「신나치」들에 의한 전체적 박해 사레도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흑인이 사는 집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일가족을 몰살시킨 사건, 길거리에서 흑인을 이유없이 칼로 찔러 죽인 사건 등 최근의 사건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예이지만 이런 사건 뒤에는 여러가 지 형태의 박해가 자행되고 「화이트로」 내상도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공격이 늘고있다』 고 최근에 공식 인정했다. 박해를 가하는 백인 청년들은 그들 스스로 빈민층 출신으로서 그들의 불행이 외래민족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외래인을 증오하는 것이다.
이런 인종만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영국사회에 잠재해 있어 왔다. 그러나 경제가 비교적 호황이었을 때 잠재해 있던 갈등이 장기불황으로 실업사태가 계속되면서 표면화한 것이 이변 폭행의 원인인 것 같다. 그런 뜻에서 영국의 정치인들은 이번 사태를 대단히 중대한 것으로 보고있다.【런던=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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