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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의 새물결(중)|등소평 체제의 새과제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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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호요방이 중공당주석에 취임하고 첫 공개연설에서 하필이면 공산주의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만고불변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선언한 배경은 무엇보다 심각한 경제난국에 있다.
현재의 중공사회 경제체제는 정통적인 공산주의의 경제정책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다는 중공지도부의 현실인식이 언뜻 보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는 듯한 발언이 나오게 한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70년대 중반 주은내(전수상)로부터 현재의 등소평(당부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공은 국민들에게 서기2천년의 화려한 중공미래상을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그날의 과실을 위해 좀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당지도부의 노선에 충실하고 헌신하라고 호소해왔다.
주은내는 75년 『중공이 서기2천년에 공업수준이나 개인소득등의 모든 면에서 구미선진국과 어깨를 겨루는 초현대적 사회주의 대국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야심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4개현대화(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계획이 그것이다.
76년 주와 모택동이 사망한 후 대권을 장악한 화국봉은 지지기반이 엷고 권위가 허약한 것을 확대하고 벌충하기 위한 조급한 생각에서 4개현대화 계획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늘려 잡았다. 중공의 연간석유 생산량의 반을 생산하는 대경유전과 같은 규모의 유전을 10개씩이나 건설한다는등 1백20개의 대형건설사업을 추진했다. 그것도 10년 동안 해내겠다는 것이었다. 투자소요 추정액만도 당시 6천3백억달러규모(부주석 이선념)였다.
서방세계가 맹목적으로 중공특수의 환상에 들뜬 것도 그래서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을 도외시한 이 계획은 2년도 못가 부작용을 낳았고 마침내는 이선념의 고백처럼 중공재정의 파탄일보 직전까지 몰아갔다. 화의 실세에 일조만 한 것이었다.
뒤이어 등소평과 진운(당부주식)은 그 계획을 백지화하는 3년간의 경제 조정기를 갖고 보다 현실에 근거한 새로운 8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등은 또 서기2천년에 중공1인당 국민소득의 목표를 1천달러선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등은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그 목표를 8백달러선으로 수정해야 할만큼 중공경제실정은 엉망이었다.
단적인 예로 80년의 중공경제성장률은 6%였지만 재정총수입은 그와는 반비례로 줄어들어 81년도의 국가예산을 전년보다 삭감해야 했다. 인플레이션을 모른다던 물가천국 중공이 지난 2년간 두자리 숫자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민들은 중공이 제시한 미래의 달콤한 꿈만 쫓아 계속 허리띠를 졸라매기에는 너무 지쳐있었을뿐 아니라 속임을 당하고있다고 자각했다.
상해같은 대도시는 물론 신강성같은 변방에서조차 정부시책에 합의하는 대규모시위 또는 폴란드식의 자유노조결성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청·장년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청년들은 더이상 어떤 주의나 정치를 신봉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은 아주 정상적이다』(「탐소」5호·여림)는 경지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니까 실용주의 지도부는 이처럼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그로 말미암아 정부가 국민의 신임을 못얻게 하는 장애가 다름 아닌 교조적 공산주의이념의 집착이라고 본셈이다.
따라서 호의 연설로 가장 영향을 받는 분야는 경제정책이다.
실제로 이미 진행되고있는 경제정책은 공산주의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본주의적 냄새가 짙은 것들이 많다. 예컨대 상여금제도의 실시, 개인기업의 부활과 장려, 기업상호간의 경제체제를 통한 시장경제원리의 도입, 1백% 외국투자의 허용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등-호 체제는 말하자면 그와 같은「이단정책」을 더 확대하고 합리화하기 의한 방편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맹신에 경종을 울리는 「이단」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중공은 앞으로 뒤떨어진 경제건설과 불만에 찬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공산주의 이념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입장에서 경제정책을 시행해갈 것으로 보인다.
수상 조자양은 이같은 경제개혁의 선도자로 대중의 소비재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또 합리적인 선에서 근로자와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불어넣는 기업이윤의 분배정책이나 사유지성격의 자유지 허용방침을 확대 실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등-호 체제의 이같은 경제시책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을뿐 아니라 성공한다해도 그들이 바라는 사회와는 다른 길로 대중적 힘이 뻗어갈지도 모른다. 여유있는 생활수준은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에의 욕구로 ?事?수도 있기 때문이며 그릴경우 현 지도부는 서로 다른 두개의 적대세력, 좌파와 국민으로부터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뭏든 「경제대장정」을 전제로한 호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은 결국 등소평의 『희든 검든간에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최고』라는 논리와 직결되는 것으로 중공의 새로운 경제정책은 대내외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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