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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현장-그 허와 실⑧|여성 불모지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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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여성연구원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연구소는 여성들의 불모지대로8개 출연산업연구소의 박사급 연구원 3백66명중 여성연구원은 3명에 불과, 우선 수석으로 대학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인삼연초연구소 4명제외).
전체적으로 보아 절반의 연구소들이 2∼3명의 여성연구원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여성과학자들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나 연구소체제가 여성에게는 벅찬 대상이거나 매력이 적은 점도 한 요인이다. 사회에서 여성을 보는 눈이 연구소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 여성이 연구소에서 견디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대덕표준연구소의 정광화박사(34·여·물리학)는『일반적으로 연구소에서 여성연구원을 잘 뽑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연구의적인 것에도 신경을 써야하는 지금의 실정에서는 어쩔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원에 묶여있는 연구소들로 같은 값이면 여러모로 편리한 남성연구원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연구소 측은 연구능력에 큰 차이가 없다면 굳이 여성을 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과학원을 졸업하고 에너지연구소에 근무하는 구현숙양(27·화학)은『여성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며 여성연구원에 대한 대우개선을 바랐다.
결혼휴식의 인정, 동등한 교육기회제공 등 여성연구원의 사기를 돋우는 제도가 여성연구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즉 여성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남녀동등이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연구능력의 저하와 연결시키는 자세는 인력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대공대원자력공학과 출신의 이경화씨(32·여·에너지연구소)는『자신의 예로 보아 결혼·출산 등 여성의 특수한 조건은 개인사정이며 이것과 연구능력과는 별개의 문제로 인식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이의에 대졸여성을 연구원이 아닌 기술원으로 많이 채용하는 것도 여성연구원이 적은 한 요인이다.
E연구소 기술원 L양은『똑같이 임시직연구원으로 채용돼 2년 근무후 정식연구원이 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불평했다.
과학기술원의 위촉연구원인 이덕원박사(42·고분자화학)는『우리사회가 여성연구원을 상대해본 경험이 없어 연구활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특히 수탁 연구에 종사하는 여성으로서의 애로는 크다』고 했다.
따라서 교육보다는 연구에 더 흥미를 느끼는 여성고급두뇌들이 할 수 없이 대학으로 가거나 처음부터 연구소를 기피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몇몇의 중견급 여성연구원들이 의로이 자신의 분야를 끝까지 지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출연연구소의 유일한 책임급 연구원인 오세화박사(39·여·화학연구소)는 그 어려운 산업체 수탁연구를 3년째 수행해 염료합성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오박사는『그 동안 기업체를 직접 들며 연구수탁을 맡아와야 했던 일이 가장 힘들었다』며 연구자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점을 털어놓기도 했다.
표준연구소의 정광화박사도 국내에서는 전혀 미개척분야였던 질량표준을 확립시킨 장본인이다. 해방이후 한국은행금고에 감자고있던 ㎏원기를 표준연구소로 옮겨, 교정체계를 세움으로써 그 동안 미국에 가서 받아와야 했던 질량표준교정을 국내에서도 가능하게됐다.
앞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고급여성인력을 다변화시키고 여성연구원을 육성한다는 측면에서도 여성연구원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고 하겠다. <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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