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수파 '내분' 갈수록 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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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 공화당의 사상적 뿌리를 이루는 보수파가 이라크전 종식을 계기로 대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면서 기세가 올라간 신보수파와 이라크 공격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온 정통 보수파가 서로를 '반(反)애국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며 험악한 대결을 하고 있다.

미국 보수파는 1990년대 초 중동정책을 둘러싼 견해차로 신보수파와 정통 보수파로 갈라졌다.

이스라엘 보호에 무게를 두는 신보수파의 시각에 정통 보수 진영은 공정한 평화를 주장했다. 두 진영의 싸움은 이라크전을 앞두고 다시 불이 붙었다.

처음엔 단순한 정책의 차이였다. 하지만 팻 뷰캐넌(96년 미 대선 공화당 후보)과 마이클 노박(CNN 정치토론 진행자)이 지난해부터 "이라크전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최대 수혜자는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양 진영의 대립은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신보수파의 주류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건드린 탓이다.

뷰캐넌은 "애국심과 종교관이 의심스러운 정부 내 '전쟁 도당'들이 미국을 진흙탕에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전쟁 초기 이라크 남부에서 전황이 꼬이는 듯하자 "거 봐라"며 신보수파를 공격하기도 했다.

전쟁 초기 절치부심하던 신보수파는 이라크전이 자신들의 예상대로 압도적 승리로 끝나자 정통 보수 진영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연설문 작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프럼 전 백악관 비서관은 내셔널 리뷰에 '애국심 없는 일부 보수파'란 제목으로 정통 보수파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뷰캐넌과 노박은 물론 새뮤얼 프랜시스(워싱턴 타임스 칼럼니스트) 등 모두 12명의 이름까지 낱낱이 거명하며 '인종차별 주의자' '보수파 내 주도권을 상실한 데 따른 무조건적 비판론자'등으로 몰아붙였다.

보다 못한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보수파는 추악한 싸움을 그만두라'는 칼럼까지 실을 정도로 두 진영의 분열과 반목은 심각하다.

내셔널 리뷰 발행인인 윌리엄 러셔는 "보수파 간 이번 내전(內戰) 결과가 향후 10년간 미 외교정책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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