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지킴이 400만 회원이 우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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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에 호수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사람들이 모터보트를 타지 못하도록요. 영국 남서부 해안에 해수욕장을 사기도 했습니다. 두 개의 큰 집을 사서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했고요. 900년 동안 개인 소유였던 성을 하나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남서부 웨일즈 지역에서 가장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내셔널트러스트 웨일즈가 하는 일이다. 물론 영국은 내셔널트러스트가 태동한 곳이고 119년의 역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단체 대표 저스틴 앨버트(49·사진) 이사장을 2일 만났다.

 - 어떻게 재정적 뒷받침이 가능한가.

 “400만 명의 회원이 있다. 연 회비는 58파운드(9만8000원) 정도다. 주로 이 돈으로 부지를 매입해서 보전한다. 또 매입한 곳의 입장료, 기념품 가게나 찻집, 식당에서 나오는 수익이 있다. 누군가는 유산을 우리에게 맡기기도 한다.”

 - 한국도 비슷한 운동이 있지만, 부지 매입 등을 하기엔 재정이 열악하다.

 “부동산 거품 때문에 한국을 비롯해 이탈리아·체코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다. 한국은 아직 내셔널트러스트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 정부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영국에 있는 웨일즈·잉글랜드·북아일랜드 내셔널트러스트는 정부가 세운 ‘잉글리시 헤리티지’라는 단체와 같이 일한다. 정부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의 보호·유지 등을 담당하고 전문가인 우리에게 운영권을 맡기는 식이다. 문화유산 보전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관광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훌륭하다. 물론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유산임을 명심해야 한다.”

 - 문화유산 보전은 돈이 많아야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려운 문제다. 영국에서도 부유한 중산층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사람들에게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교육한다. 우리 단체의 로고에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For ever, for everyone)’란 단어가 적혀 있다.”

 - 일반 국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사실 개인이 무엇을 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정부와 자선단체는 매우 느리고 기업은 돈만 벌 줄 안다. 대신 꿈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들어 낸다. 다른 국가를 방문했을 때도 한두 명의 비전이 사회를 바꾸는 걸 지켜봤다.”

 앨버트 이사장은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5회 문화소통포럼(CCF) 참석차 방한했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이 한국문화를 알리자는 취지에서 각국 문화계 리더를 초청한 행사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그해부터 개최됐다.

영국대표로 참석한 앨버트 이사장은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자연환경·역사유적 관련 영화를 만들어 BBC·NHK 등에 공급했다. 2011년 내셔널트러스트 웨일즈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CCF 포럼 기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방문한 그는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전시장의 최신형 TV를 꼽았다. 대형 TV를 통해 자그마한 유물을 확대해 자세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가진 이런 기술 역시 문화유산 보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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