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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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대도시를 공룡에 비유한 사람이 있었다. 미국의 문명비판가「루이스·멈퍼드」.
공룡은 그 험상궂은 생김새와는 달리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있다. 거대한 체구가 그것이다. 기동성이 없다. 오늘의 지상에 공룡은 화석만 남고 몸체가 없는것도 바로 그런 약점때문이었다.
엊그제 서을 강남지역의 단수소동은 바로 그공룡과 같은 도시의 실상을 보여 주었다. 강남에 임립한 아파트군은 삽시간에 마비되고 말았다.
특히 아파트촌의 경우 전기나 수도는 공기나 혈액과 같은 존재다. 그것이 멎으면 모든 기능도 합께 멎고 만다. 전기의 경우는 더옥 심각하다.
1965년 11윌 미국동북부의주민 3천만명은 무려 12시간이나 암흑의 공포속에 있었다.암흑 그자체도 두렵지만 전기없는도시는 죽음, 바로 그것이었다.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고 수도가 끊어지고 난방이 멎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강도들의 약탈·방화가 세상만난듯이 잇달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기는 오늘의 문명사회에선 도덕을 지켜주는 관제등과 같은 구실을 하고있다.
80년말 현재 우리나라 주택의 6.2%인 34만호가 아파트다. 거의 예외없이 이많은 아파트지역에 전기나 수도가 끊어지면 동시에 사막이 되고말 것이다. 앨리베이터는 고사하고 식수는 여간 다급한 일이 아니다. 우물이있는 이웃집에 물동이를 들고갈수 있는 형편도 못된다.
설령 이웃에 우물이 있어도 고가아파트에 그것을 어떻게 길어 나를지는 난감한 일이 아닐수없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강남의 아파트들은 그내면을 보면 거대한 허상같다는 느낌도 든다. 전기스위치 하나만 움직이면 그곳을 공포와 불안의 도가니로 만들수있는 컷이다. 수도도 마찬가지다. 15층아파트에서 물이없는 생활은 상상만해도 질식할 것같다.
「아킬레스」의 발뒤꿈치라고나 할까. 빌eld이 아무리 웅장해도, 주거환경이 아무리 눈부시게 화려해도 아파트는 기본적인 조건의 하나만무녀져도, 그것은 가설무대처럼어설프고황량해지는것이다.
결국 한 사회의 발전은 조화와 균형속에서만 빚을 말할 수 있다. 오늘 수도나 예기의 자급수단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할 아파트군은 그 외양의 위세와는 달리 한날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웅변하고 있다.
이번의 단수소동은 아픈 교훈이 아닐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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