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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 … 위태롭지만 희망을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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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하철 군상의 관찰자 -. 제36회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자 배윤환(31)씨는 8m 캔버스에 70개 액자 그림으로 지하철 속 사람들을 묘사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절벽에 매달린 사람-. 작업실 벽에 가로 8m 캔버스를 고정하고 그림을 그려나갈 때, 배윤환(31)씨는 그런 기분이었다. “벽을 마주해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것은 넘어서야 할 문제 혹은 싸움의 대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36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배씨의 작품은 ‘클리프 행어(Cliff Hanger, 217×800㎝)’다. 벽에 고정한 천 속에 그가 그린 70개의 액자 그림이 들어 있다. 지하철 손잡이를 매달리다시피 잡은 사람, 토스트를 먹고 있는 여자의 입,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물감을 흩뿌린 옷을 입은 화가, 만화 캐릭터 같은 일그러진 얼굴 등 기괴한 군상을 그려넣었다. 지하철 인간 극장이다.

“작업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지하철이다. 반복되는 동선의 지루함 속에서 매번 다른 사람들을 대한다. 가보지 않은 역이나 출구처럼.” 올해 한국 미술의 새 주인공이 말했다.

 그림엔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다. 충북 충주 출신으로 청주 서원대 미술학과와 경원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배씨는 “중심이 아닌 데서 왔다. 마이너리티 정서가 나의 힘이다. 열등감이 내게 좋은 에너지로 발현된 듯하다”고 말했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지만 그림엔 몰두할 수 있어 미대에 진학했고,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청주 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며 작가 인생을 시작했다. 주위에선 ‘백수 하나 탄생하겠구나’ 하는 근심어린 눈빛으로 대했다.

왼쪽부터 유진상 심사위원장, 안규철 운영위원장, 대상 배윤환씨, 우수상 유목연씨, 최훈 중앙일보 편집국장.

“우수상이라도 받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대상 수상자로 발표돼 깜짝 놀랐다. 늘 힘이 된 부모님과 형,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해 준 병규와 그의 어머니께 감사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배씨는 “내내 성남 작업실에 있다가 벽화나 삽화 그리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지하철을 타고 종종 세상으로 나온다”며 “퇴근 시간엔 손잡이에 겨우 지탱해 가고, 고기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을 본다. 인생의 곡선과 굴레, 같은 곳을 돌고 도는 지하철에서 우리 모두 어떻게든 뭔가 해보겠다고 다같이 매달려 간다”고 작품 구상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많은 이들이 서로 엇갈리며 부딪칠 듯 부딪치지 않고 아슬아슬 위태롭지만 온전하게 제 갈 길을 간다”며 “회화의 종말을 이야기한 지 오래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 회화다. 위태로우면서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지하철 안의 수많은 동선과 궤적들을 닮았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10일까지=중앙일보·JTBC가 주최하고 포스코가 후원하는 중앙미술대전에는 올 초 190명이 응모했다. 포트폴리오 심사를 통해 20명을 선발했고 이들 중 프리젠테이션 심사를 거쳐 10명을 뽑았다. 10명의 선정작가가 지난 6개월간 만든 신작으로 전시를 열었다.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 그리고 미술평론가 정현씨 등 4명의 심사위원이 전시를 보며 토론해 최종 수상자를 뽑았다.

 대상(상금 1000만원)은 배윤환씨, 우수상(상금 500만원)은 유목연씨에게 돌아갔다. 안규철 운영위원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신진작가 등용문을 통해 첫발을 내딛는 선정작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전시는 10일까지다.

 중앙미술대전(fineart.joins.com)은 1978년 정부 주도 공모전의 경직성을 벗어나기 위해 시작됐다. 박대성(2회 대상)·김선두(7회)·문봉선(10회)·정재철(11회)·신기운(29회)씨 등 한국 미술의 오늘과 내일을 이루는 많은 이들이 중앙미술대전을 거쳐갔다. 무료. 02-2031-8488.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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