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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족의 뜻」담긴 통일의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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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화통일 정책자문학회의 첫 회의에서 전두환대통령이 내놓은 제안은 지난번 l·12제의의 연장선상에서 남북한 최고 책임자회담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제시하고 남북한간의 동질성회복을 위한 사회개방의 길을 모색하자는데 가장 큰 뜻이 있다.
돌이켜 보면 9년전인 l972년에 발표된 7·4남북공동 성명은 그 이듬해 김영왕의 남북조절위 회담을 거부하는 8·28성명으로 좌절됐다.
조국통일을 촉진하기 위해 합의했던「7·4성명」의 3가지 원칙 중 마지막 항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는 민족단결의 원칙에 직접 위배되는 김영주의 성명이후 모처럼 합의된「7·4성명」의 뜻은 와해되고 말았다.
7·4성명은 『상부의 뜻을 받들어』이뤄진 것이다. 「상부의 뜻」이 김영왕의 성명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면 공동성명의 합의가 이뤄지지 앉은 것도「상부」,즉 김일성의 뜻이 아니었겠는가.
그동안 우리측의 「상부의 뜻」은 차단된 남북교류와 대화를 재개하자는 것으로 일관되어 왔다.
1·12제의가 그랬고 전두환대통령의 1·12제의 역시 마찬가지며 이번 것도 그 연장이다.
지금껏 우리의 「상부의 뜻」은 어디까지나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내세워 정치선전을 하자는 입장이 아니라 우리 한국사람 일반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남북관계가 지금과 같은 양태로 진행되다가는 대화의 문을 열기 어렵게 되는 역진사태가 계속되고 한민족이 영영 재결합하는 기회가 멀어질 것을 염려해 새롭게 7·4공동성명의 정신을 살리자는 뜻에서 이번 제의가 나온 것이라고 봐야한다.
최소한 논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북한이 이번과 같은 무조건적인 제의마저도 또 거부할 이유는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적의가 내포된 것도 아니고 대의명분을 내세워 상대방을 곤란케 하자는 것도 아니라 평범한 일반국민의 입장을 대신하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7·4성명이 좌절된 후 새로운 차원에서 남북문제를 타개하자는 이러한 노력을 전민족이 환영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만약 우리의 제의가 받아들여져 새로운 접촉과 대화의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민족화합의 모색노력은 단순한「상부의 뜻」이 아니라 「민족의 뜻」으로서 민족재결합의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 개인의 듯으로 흐름을 역류시키지 못하게될 것이 아닌가.
모든 남북교류와 결합은 전민족적인 문제이므로 반드시「전민족의 뜻」이라는 형태로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후퇴할 수 없는 민족단합의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나가 통일의 길을 향한 새로운 차원이 전개될 것이다.
사회개방이라는 것도 남북교류를 통한 동질화 작업의 전주이다. 결국 타율적으로 이질화된 민족의 동질화를 위한 것이다. 이것만이 민족상잔을 피하는 길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사회개방은 당장에는 굉장한 저항요인을 안고 있다. 30여년 동안 구축된 체제, 즉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구조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태여 체제까지 끄집어내 거론할 필요가 없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고, 그것이 되풀이되면 점점 이해가 생기고, 정이 생기고, 뜻이 같아지고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된다.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이 몸은 다르더라도 행동과 뜻이 같아지는 것처럼 남북접촉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서로 침을 뱉고 욕할 것이 아니라 우선 인사부터 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해가 생길 것이 아닌가. 동족인데 그런 일을 왜 할 수 없는가. 인사를 하고 지내자는 것인데 그것도 마다하면 인륜에도 어긋나는 행동일 것이다.
이번 제안에서는 사회의 완전한 개방이 어려우면 체육·문화·학문·우편·경제교류로부터 접근을 시작하자고 하고있다.
한꺼번에 6천만 민족이 같은 광장에 서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서로의 내재율이 흔들리지 앉는 범위 안에서 공유할 수 있는 여백을 조금이라도 가지자는 것이다. 그 공유의 폭이 점차 넓어지도록 노력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전 민족의 뜻이 강조되는 소이도 그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것만이 새로운 6·25를 피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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