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진통겪는 이베리아반도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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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0년 가까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받다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장기집권의 주역들이 사망함으로써 6년 전 서구식 의회정치의 길에 들어선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스페인과 포르투칼의 민주화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체제개혁에 불안을 느낀 구체제 옹호세력에 의해 금년들어 국회의사당점거와 은행인질사건을 겪은 스페인과 의회정치 7년동안 의회 안정 세력이 없어 10차례 넘게 내각을 바꾼 포르투칼의 진통은 체제변혁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시련인지에 대해 장두성 런던주재특파원이 현지에서 특별 취재했다.
마드리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는 각종광고판사이에 커다란 그림 한폭이 걸려있었다. 실물보다 2배쯤의 크기로 그려진 이 그림은 고 「프랑코」총통을 가운데 두고 그 둘레에 그의 추총자들이 물러서 있는 광경을 그리고 있는데 「프랑코」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 것에 비해 추종자들의 얼굴은 하얀 여백으로 남겨놓고 있다.
「프랑코」는 죽었지만 그의 주변에서 생전에 권력을 휘두르던 추종자들은 아직 살아서 스페인 사회의 막후에 도사리고 있음을 이 그럼은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을 여백으로 남겨놓은 것은 그들 중 대부분이 모두에게 알려진 현존 실력자들이기 때문인듯했다.
이 그림아래에는 『「프랑코」의 추총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가?』라는 경고조의 물음이 씌여 있었다.
1년전 기자가 마드리드를 방문했을 때는 민주화의 거센 물결에 밀려 공공장소엔 감히 나타나지도 못하고 수세에 몰려있던 「프랑코」의 잔존세력이 이제는 이 그림이 경고하듯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무엇인가」를 하고있다.
그들의 일부는 기관단총을 들고 의사당을 점거하기도 하고 길거리에 몰려 군의 정치개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도하며 거리의 담벼락 여기저기에 협박투의 정치낙서르 쓰기도 한다.
이들은 이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나 그리지 앓고 남겨둔 얼굴이 암시하는 배후응모의 단계를 넘어서 저마다 가친적인 장소를 확보하고 6년동안 조심스레 밟아온 민주화과정을 되돌리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극적인 등장은 지난 2월23일에 있었던 보안군의 의사당점거사건이었다. 그리고 기자가 마드리드를 방문하는 동안 일어난 바르셀로나은행 점거사건이 그 두번째 출현이었다. 잇단 위기를 맞아 민주화를 소중히 여기는 대다수 스페인국민과 정부는 앞으로 제3, 제4의 비슷한 도전이 밀어닥쳐 스페인 민주체제를 위험하게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과반수에서 18석이 모자란 원내세력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중도연합당(UCD)의 「소텔로」 약체내각은 이런 위험 앞에서 한편으로는 「프랑코」파의 아심인 군부의 강경정책요구에 양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개혁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대다수국민들의 의구심을 무마해야하는 등 상극된 명제를 조화시켜야하는 어려움에 맞닥뜨려있다.
2·23쿠데타기도사건 이후의 스페인 정치는 군부에 대한 민간정치인의 무마책이 주된 흐름을 이뤄왔다. 공산당과 사회당은 이 사건직후 소요를 자극할만한 행동. 즉 파업이나 정치시위를 자제하겠다고 왕에게 서약했으며 민주화에 역행된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바스크지방에의 군대투입조치를 지지했다. 여당에 대한 공박도 중단한 사회당의 한 간부는 『다음총선에서 어느정당이 승리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다음 총선자체가 실시될수 있느냐가 지금으로선 최대관심사다』는 말로 야담의 「협조」무드를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의회는 현재 비상사태령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새 법안을 심의중이다.
스페인 국민들의 최대관심사는 2·23쿠데타기도사건의 조사와 관련자재판에서 정부가 얼마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할수 있느냐에 쏠려있다.
쿠데타 주동자를 영웅으로 만들려는 극석파의 공공연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조사활동은 현재 4명의 장성을 포함, 3l명의 군인이 연루된 것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금을 대고 배후에서 이들을 도운것으로 알려진 1백50여명의 민간인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없다.
그래서 일부여론은 정부가 사건전모를 의도적으로 은폐함으로써 처벌대상을 축소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이 같은 국민들의 의심은 최근의 바르셀로나은행 점거사건 경위를 둘러싸고 더욱 깊어졌다.
처음 이 사건은 25명의 극우파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며 이중에서 13명은 복면한 보안군 소속의 현역군인이라고 현지경찰이 밝혔었다. 그러나 범인들의 검거 후 나온 내무성발표는 범인총수가 10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중 보안군 소속군인은 한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성분도 처음에는 은행강도라고 했다가 후에 우파의 사주를 받은 잡범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발표내용의 차이는 곧 정부가 범인 중 현역군인은 뒤로 빼돌리고 범인 수를 줄여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숨기려 한다는 의심을 자아냈다. 만약 이런 의심이 사실이라면 그같은 저자세의 정부가 어떻게 2·23사건의 주모자들을 처벌할 수 있으며 국민들을 제2, 제3의 쿠데타 위험에서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일반적 우려다.
이밖에도 정부의 저자세는 여러갈래의 에피소드로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각료들이 불참해온 「국군의 날」행사에 금년에는 「카를로스」왕을 위시해서 각료전운이 참석했다든가, 테러범에게 피살된 군인의 장례식에 수상이 맨 먼저 참석했다는 이야기하며, 쿠테타 주모자인 「테헤로」중령은 감방 아닌 별장에서 살고있으며 TV와 전화까지 설치해 놓았다는 보도 등 갖가지다.
이런 일반적 분위기를 놓고 군은 쿠데타에 실패했으면서도 성공한 것과 다를바 없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는 견해가 널리 퍼져있다.
한편 쿠데타기도직후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쿠데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4%에 불과했고 반대는 76%였다. 표면에 나타나고있는 「프랑코」세력의 발호에도 불구하고 국민여론은 민주개혁작업에 절대적 성원을 보내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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